내 고향은 서울, 지금은 재건축되어 흔적도 없어져 버린 주공아파트 단지이다. 현재 그곳은 중대형평형의 중산증 이상이 거주하는 동네가 되어 버렸지만, 내가 살던 그 시절 1970년대와 1980년대 그 아파트는 13평 방 두 칸짜리 서민들이 모여 살던 아파트 동네였다.

그 좁디좁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네사람들 모두 넉넉하지 못했음은 자명할 터. 우리 집 역시 많은 아이들에, 뻔한 아버지 월급 탓에, 엄마의 신기에 가까운 살림살이 지혜로 근근히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보면 사람들 인심만은 참 후하지 않았나 싶다. 돌아가며 집집마다 보리밥에 나물 해먹던 거며, 김장이면 다들 모여서 품앗이 하던 거며, 누구네 집에 시골에서 쌀이라도 올라오면, 한 바가지씩 나누어 먹던 거 하며.

30대 중반인 내 또래만 해도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덕택에 형제가 셋이 넘는 집이 드물었는데 우리 집은 딸만 넷이었으니, 동네에서 특이한 집이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딸만 넷인 집이 또 한집이 있었다. 아이들 나이도 비슷했었다. 우리 집은 5층, 그 집은 1층.

엄마 말씀이 그 1층집은 동네 에서도 특히 살림이 어려웠다고 한다. 살림이 너무 어려워 김치는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팔고 남은 배추 시래기로 해먹곤 했었다 한다(그런데 엄마 말씀이, 배추 시래기로 하는 배추김치가 그리도 맛있었단다). 그 처지가 하도 딱해 아이들한테 고기는 못 먹여도 계란은 먹여야 하지 않냐며, 엄마가 가끔 계란한판 사다주곤 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가슴 아린 70년대, 80년대다.

이게 며칠 전 엄마한테 갑자기 그 집 생각이 나서 물어본 내용이었다. 그 집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바로, 내 생애 처음 먹어보았던 돼지갈비 때문이었다.

 

내 나이 일곱인가, 여덟인가 했으니 1980년대 초반이었다. 두 집다 가정형편 탓에 아이들이 한 여름에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나마 저렴한 어린이 대공원 수영장이라도 가자고 했던 모양이다. 두 집 합치니 여자만 열 명. 역시 살림살이 아끼자고, 두 집 엄마가 생각해 낸 건, 택시를 불러서 두 식구가 같이 타고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택시가 소형이었더랬다. 소형택시에 열명...아무리 아이들이라지만, 얼마나 우스운 광경인지. 엄마 말씀이 그 택시 기사가 그리 고마웠단다. 싫은 내색은커녕, 다 이해한다고 말씀해 주시더란다. 주머니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였던 시대가 아니었을지. 

그렇게 모여서 간 수영장에, 그 형편 어렵기로 소문난 1층 아주머니가 돼지갈비 간장양념을 해오셨다. 내 생에 처음 먹어보는 돼지갈비. 달콤 짭쪼름한 그 돼지갈비가 그리 입에 살살 녹을 수가 없었더랬다. 그걸 하얀 쌀밥에 얹어 먹는데(평소에 먹던 보리밥이 아니라), 세상에 이런 맛이 다 있나 싶었다. 야외에서 무언가 해먹는 것도 처음이었다. 해서 난 어린 나이에 눈치도 없이 구워지는 족족이 홀랑홀랑 집어 먹었는데, 다 커서 생각해 보니, 그 아주머니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집도 모처럼 아이들 먹이려 큰 맘먹고 장만해왔을 텐데.. 이후에 어른이 되어 먹은 어떤 돼지갈비도 그렇게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다행이도 그 집 아저씨가 몇 년 후 사업이 잘 되어서 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 갔다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아주머니가 그 가난했던 아파트 동네에 가끔 오셨다 하는 걸 보니, 어렵지만 다들 도와가며 살던 그 시절이, 그 아주머니에게도 그리운 시절이었던가 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82910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90984
261 잔치 국수 드시려 오세요 ruler1726 2013-02-28 12715
260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글 file lim2525 2012-01-07 12758
259 <맛선물> 80점짜리 김치국 jyeon82 2013-01-02 12794
258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해요^.^* file warmapril 2012-01-10 12806
257 <맛선물>특별한 서른셋 생일 케이크 ddorimom2003 2013-01-14 12807
256 <맛선물>푸짐한 시골 인심 맛 oyllks1966 2013-01-16 12808
255 사랑은 맛을 타고<꽃게다리살 비빕밥> ykkchoi 2011-11-03 12812
254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 (나마스떼, 네팔씨!) pedori 2012-01-11 12860
253 슬픈 빨간고기 cck8397 2012-01-09 12863
252 가족의 사랑이 듬뿍 담긴 짜장면 ky84 2011-10-15 12870
251 [사랑은 맛을 타고]꽁치의 화려한 변신 congimo 2012-01-17 12875
250 막내야 ! 입 맛 없지 어른 한 숱갈만 묵어 봐라 !!! hyoja414 2011-10-27 12901
249 요즘따라 더 생각나는 음식 heunss 2012-04-19 12901
248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 합니다> 가장 맛있었던 밥상? (남이 차려 준 밥) kchjkh 2012-01-17 12919
247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합니다~ file pemart 2012-01-16 12921
246 사랑은 맛을 타고-강아지도 외면한 첫 요리의 추억 xhddlf8794 2012-01-17 12921
245 사랑은 맛을 따고사연 jean7208 2012-02-16 12925
244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합니다<아동센터아이들의샌드위치> jennylee308 2012-01-14 12926
243 할아버지 레시피 jejubaram 2011-11-20 12927
242 눈물의 밥상 john1013 2012-01-27 12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