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남편은 방귀대장 뿡뿡이?

조회수 11336 추천수 0 2012.01.16 10:53:49

 대학 때부터 짝사랑하던 3살 연하의 동아리 후배 남자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배가 후배 남자에게 흑심을 품는다는 게 낯뜨거운 시절이어서 연애는커녕 누군가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다른 남자 후배들에겐 개인적으로 술도 사고 영화도 보여줬지만, 그 후배에게만은 그러자고 말하기가 낯뜨거웠다. 우린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배나 나나 오랫동안 애인이 없었다. 나는 종종 술을 마시자는 핑계로 후배를 불러냈고, 후배는 눈치도 없이 동기들을 우루루 끌고 나와 공짜술을 마셔댔다.

 옆구리가 지독히도 시렵던 어느 겨울 날, 나는 큰마음을 먹고 후배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디데이를 잡고 미장원에 들러서 머리도 만졌다. 장소도 평소 즐겨서 만나던 신촌이 아닌 압구정으로 잡았다. 먼저 분위기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한편을 보기로 했다. 제목은 <어느 멋진 순간>. 그날이 내 인생의 ‘어느 멋진 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고백을 해야할지 고민하느라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영화가 끝나고, 후배에게 “영화 재밌었어?”라고 물었다. 후배는 “누나, 미안해. 내가 계속 방귀 껴서”라는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벙싯벙싯 웃으면서. 머리가 하얘지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오늘 아침에 뭘 잘못 먹었는지 계속 방귀가 나오네. 방귀 소리 죽이느라 영화도 제대로 못 봤어. 대체 무슨 내용이야?”

 무슨 내용인지는 내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날을 잘못 잡았구나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마음을 가다듬고 예약해놓은 우아한 이탈리아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봉골레 파스타와 토마토해물파스타, 카프레제 샐러드와 음료를 골랐다. 부디 이 순결한 파스타집의 인테리어와 감미로운 파스타가 우리에게도 순결하고 감미로와질 기회를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거룩한 내 마음을 상상조차 못 하는 후배는 “맛있겠다”며 샐러드를 향해 포크의 융단폭격을 날리더니 그때부터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자신의 배변상태에 대해서 상세히 묘사하면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진지한 상담까지 요청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앞에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방귀에 응가 이야기를 해대는 이런 아이에게 대체 고백을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싶었다. 남들은 남자가 꽃다발을 사들고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반지를 주면서 고백까지 듣는다는데, 나는 예약이란 예약은 내가 하고도, 돌아온 것은 난감한 생리현상들이었다.

 고백은커녕 파스타도 제대로 다 먹지 못하고 자리를 마쳐야 했다. 후배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안녕’을 외치며 썡하니 달려갔고, 나는 허탈한 마음에 2시간 넘게 집까지 걸어왔다.  

 그래서 우리 둘은 어떻게 됐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린 둘 다 계속 애인이 없었고, 그렇게 옆구리가 시린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서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후배, 그러니까 내 남편의 방귀는 그날 특별히 잘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원래 ‘방귀대장 뿡뿡이’도 울고 갈 방귀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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