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셋 생일을 맞이해서 생크림 케이크를 직접 굽기로 했다. 이번 케이크를 시작으로 가족들의 기념일마다 홈 메이드 케이크를 굽겠다는 꿈에 부푼 나는 남편을 재촉해 케이크 틀이며, 제빵 재료를 사러 다녔다. 핸드믹서도 사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에 망설이다 ‘팔 힘 하면 어디가도 빠지진 않으니까 거품기 들고 대충 휘저으면 되겠지.’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고대하던 생일날. 크게 호흡을 한번 넣고 큰 볼에 계란을 깨뜨려 넣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되었다. 거품기를 움켜쥐고 계란 액이 뽀얀 크림 상태가 되길 빌며 열심히 휘저었지만 책과는 달리 크림상태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왜 케이크를 굽는다고 했을까.’하는 회의가 들려는 찰나, 마침내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는 크림. 하지만 밀가루를 넣는 순간, 사랑스러운 나의 크림은 순식간에 푸욱 꺼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반죽을 얼른 케이크 틀로 옮겨 서둘러 오븐에 넣었다. 15분 후 오븐에서 빼낸 나의 첫 케이크 시트는 넣은 반죽의 1.2배밖에 부풀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케이크 만들기를 중단할 수는 없는 일. 마음을 추스르며 생크림을 만들 준비를 했다. 앞서 계란 반죽을 만드느라 팔 힘을 다 소진한 탓에 거품 낼 엄두가 안 나 주저하고 있는데, 남편이 전동드릴에 거품기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뒤 왜앵~하고 돌리며 장난스럽게 웃는 것이었다. 전동드릴 믹서는 의외의 성능을 자랑했다. 나는 좀 더 속도를 올려달라고 주문했고, 속도를 이기지 못한 볼이 바닥에 떨어지며 집은 순식간에 생크림 범벅이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나의 케이크는 시판용보다 훨씬 낮은 높이에, 생크림이 울퉁불퉁, 덕지덕지 발려진 모습이었다.
난장판이 된 주방을 치우며 출출함을 느낀 우리 부부는 생일 축하 노래만 겨우 부르고 서둘러 생일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엉망인 케이크였지만, 집에서 만들어 담백하고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남편 덕분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돌아오는 다음 달 남편 생일에는 정말 멋진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다.
서보경/ 경기도 부천시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