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입맛, 나의 입맛
저는 결혼 4년차 주부입니다. 결혼 전엔 거의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한국인의 입맛’인 된장국을 끓이는 법도 모르고 살다가, 자취하고 머지않아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다시마와 멸치 등을 넣고 국물을 우려낸 다음 된장을 훌훌 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취 경력까지 합해 요리를 제법 할 줄 알게 되었죠. ‘이 요리의 양념은 이렇게, 저 요리의 간은 저렇게’ 하면서, 머릿속에 나름의 요리법도 떠올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결혼하고 나서 남편에게 매일 맛있는 밥상을 챙겨주기 위해 요리책도 보고 요리 강습도 받으면서 쌓아온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제가 제빵 블로그를 보고 따라한 음식이나, 이탈리아 음식이나 프랑스 음식 같은 색다른 서양요리를 선보일 때마다 제 노력에 걸 맞는 충분한 칭찬까지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식단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모험의 장이 되어버렸는지, 어느 날 저는 남편에게서 색다른 서양식 보다는 어머니가 해주셨던 ‘밥’을 맛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의 입맛이 한식이었는데도 저는 서양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정작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한식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습을 받지도 않았고, 엄마 곁에서 배우지도 않았으며, 서양식 요리법 블로그를 찾았던 열정만큼 반찬 요리법 블로그를 찾은 적도 없었습니다.
때마침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반찬 재료를 부치시면서 청국장을 넣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로 청국장이 몸에 좋으니 꼭 해먹어야한다는 당부까지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가, 너 청국장 좋아허냐? 거시기, 그거는 된장보다 몸에 좋고, 특히 여자 피부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잉. 내가 보내 준 무농약 무를 ‘총총’ 썰어서 끓일 때 넣고...아 참, 끓일 때는 절대 뚜껑 닫으면 안 된다잉~안 그러면 국물이 넘처부러~알았지?”
아.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가 집에서 한 번 끓인 청국장 냄새를 도저히 맡을 수가 없어 코를 막고 집안을 돌아다녔던 지라 그 이후로 집에서는커녕, 식당에서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청국장도 숟가락 한 번 떠보지 않고 살았던 걸요. 저는 그 기억 때문에 선뜻 청국장 요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은 자신이 끓이는 청국장을 곧 내가 사랑하게 될 거라는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청국장 국물에 무가 잘 익어가는 소리가 나면서 생각보다는 냄새가 괜찮다고 느꼈지만, 선뜻 국에 수저를 대진 않았습니다. ‘냠냠쩝쩝’ 너무도 맛깔스럽게 먹는 남편을 보고 한 번 맛만 보자는 생각에 한 숟갈 먹어봤는데, 어쩐 일인지 제 기억 속의 구린내는 없고 향긋하게 구수한 맛만 가득했습니다. 이후 두 숟갈, 세 숟갈 연거푸 떠먹는 저를 보고 마주앉은 남편은 ‘그것 봐라~’하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요즘은 여자 피부에도 좋다는 청국장을 된장국보다 더 자주 끓여먹고 있습니다. 원래 맛있는 음식이었는데 제가 향에 기겁한 채 그 맛을 모르고 살았던 건가봅니다. 남편과 함께 입맛을 맞추지 않았다면 그 이후로도 먹을 일 없었던 청국장을 이렇게 남편과 식탁에서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