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골목마다 피자집이 없던 90년대 초, 피자는 빈대떡처럼 가깝지 않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친구 집에 갔을 때,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는 그 집의 일상은 강북에서 강을 건너온 나로서는 놀라움 자체였다. ‘귀한 피자를 집에서 이렇게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다니.’
맛도 맛이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피자를 의외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분되었을 것이다. 꼼꼼하게 방법을 배워왔다. 그 뒤로 늘 한식만을 고집하던 우리 집은 자주 피자를 굽기 시작했다. 소스는 토마토 케찹, 마늘, 양파가 전부고. 피자도우는 밀가루에 계란과 우유로 끝낸다. 토핑이랄 것도 없다. 치즈만 풍성하게 얹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화려할 것도 없는 재료다. 오븐이 없었기에 프라이 팬 뚜껑을 닫아 아래서는 굽고 위에서 익히는 식이다. 하지만 그 맛은 온 식구를 사로잡았다.
강남에서 배워온 피자이기에,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피자이기에, 다섯 남매는 자주 피자를 먹었다. 친구가 오거나, 마음편한 손님이 방문하게 되면, 으레 피자를 대접했다. 내가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도, 어머니는 그 피자를 만들어 주셨다.
2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집에서 피자를 만들지 않는다. 5남매가 모두 결혼하고, 그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세월만큼 세상은 변했다. 이제 우리는 아무도 그 피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도 누군가를 위해 피자를 굽지도 않는다.
문득, 주말 내내 엄마를 들볶는 큰 녀석과 그런 형과 온 종일 티격태격 하는 작은 녀석, 그리고 먹성이 참 좋은 막내를 보면서 그 피자가 떠올랐다. 강남에서 배워왔던 피자.
또 다른 20년이 지난 후, 아이들이 추억할 수 있는 피자를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강남 피자가 아니라 아빠가 만들어준 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