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화려한 변신
바다가 멀지않은 곳이 고향인 부모님 식성 덕분인지 나는 해산물이면 거부감 없이 가리지 않고 먹는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생선을 즐겨먹는데 한번은 고향집 냇가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잘못 먹었는지 건강검진 결과에 디스토마까지 발견될 정도였다. 다행히 치료약으로 해결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해물에 대해서만은 거부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쯤 되었을까.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연수를 갔는데 마침 포항에 사시는 선생님 두 분을 알게 되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적어서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는데, 언제 한번 포항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놀러오면 포항에서 유명한 ‘과메기’를 사주시겠다는 것이다. 과메기라.. 나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요리였다. 대충 설명하시기로는, 겨울에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꾸덕꾸덕해지면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라는데 내가 살던 서울에서는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나의 관심이 거기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나보다.
그러던 중, 부산에 사시는 어느 선생님께서 사무실로 과메기를 보내주셨다. 비린내 가득하고 가시 많은 하찮은 꽁치가 어라, 등이 푸릇하며 배는 초컬릿 빛을 내고 반질반질 윤기를 발산하는 꽁치로 탈바꿈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보잘 것 없는 꽁치가 360도 변신한 것이다. 비리기만 한 그 꽁치가 겨울바람을 맞아 쫄깃쫄깃한 탄력을 내뿜는 과메기라니. 게다가 씹을 때마다 입에 걸리던 그 많은 가시도 없다.
그 뿐이랴. 물미역, 돌김, 배추, 마늘과 쪽파까지 모두 올려놓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아, 뭐랄까. 나의 입맛이 한껏 고급화되는 순간이랄까.
양이 적어 많이는 못 먹었지만 옛날의 그 맛은 아직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경북 영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귀농을 했다. 동해 쪽에 살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조개나 게, 낙지 같은 해산물은 거의 먹지 못하지만 면내에 있는 상설시장에는 날마다 회를 공급하는 할머니가 계셔서 값싸고 싱싱한 횟거리를 쉽게 장만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는데 과메기를 한 접시 턱, 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구룡포 과메기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꽁치 스무 마리 한 축이 만 사오천원밖에 하지 않으니 값도 아주 저렴했다. 과메기를 사오는 날이면 비늘을 벗겨 몇 마리씩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심심찮게 꺼내먹었다. 손님만 오면 한 접시씩 내오는 것은 기본이고 친정이나 시댁에 갈 때마다 두 축씩 사들고 갔다. 서울 촌놈들 먹이겠다고 행사가 있는 곳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우리집으로 민화투 치러 오신 마을 분들에게 꼬냑 한병 내올 정도로 어느 술이건 잘 어울리는 안주가 되었다.
과메기에 야채를 버무려넣어 초고추장 무침을 해먹기도 하고 구워도 먹어보고, 이번에는 과메기 초밥도 한번 해먹어봐야겠다. 농한기만 되면 우리집 술 상 위에 어김없이 올라오는 과메기. 이제는 우리집 똘복이(개 이름)도 너무나 좋아한다.
경북 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