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단 말을 꺼내려고만 해도, 도처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나는 어린 숙녀였다. 입으로는 사랑해 라고 말해도, 마음은 종종 어딘가, 그 사람과 떨어진 채 먼 곳을 노니는 것만 같았다. 사랑 안에 서 있는 것이 불편했다. 다섯 살 많던 남자친구는, 경험 많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우리는 서로 모국어가 달랐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있어서 항상 적정선의 타협이 있었다. 서로 문법이 왕창 틀린 영어를 구사하면서 대강 그런 말을 하나보다 라고 적당히 알아들었다.
"이거 한국꺼야? 이걸로 뭐 한국음식 만들어줄 수 있어?"
어느 날 그가 찬장에서 당면 봉지를 꺼내며 물었을 때 나는 아주 잠깐 주저했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한글이 쓰인 당면 봉지를 발견한다는 것이 흔치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역만리 타지에서 당면 봉지 하나로, 정통 한국음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그런 미션이 내게 주어질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그 물음은 물음이 아니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잡채를 만들어야겠다. 근데 잡채에 뭐가 들어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니 잡채란 대체 어떤 음식이었을까. 세상에 어떤 재료들을 섞어야 잡채라고 부를 수 있는 맛이 나는 걸까? 태연한 척 채소를 집으면서 나는 잡채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했다. 남자친구는 약간 신이 나있는 것 같았는데 그게 더 나를 힘들게 했다. 구할 수 없는 재료가 꽤 있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고기는 사지 않았다. 그는 싱크대 앞에서 공예하듯이 당근을 써는 내 등 뒤로 와서 알지도 못할 춤을 추며 수선을 피웠다. 그러면서 자기는, 막춤 추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웃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하고 재료 볶는 거나 도와달라고 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얘는 잡채가 원래 무슨 맛인지도 모를텐데 잘 만들면 어떻고 못만들면 어때. 알게 뭐야.' 우리는 조그만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건 한식으로 치자면 빵점짜리 요리였는지도 모른다. 참기름이 없어서 아몬드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파프리카와 브로콜리를 넣어 만든 음식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와 만들었던 잡채 생각을 종종했다. 남자친구는 내 요리를 네 그릇째 덜어담아 먹으며 씨익 웃었더랬다. 잡채가 어떤 음식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난생 처음 만든 잡채를 평가받는다는 상황이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기뻤다.
우리 관계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아마 떡을 넣은 파스타나, 아몬드 버터가 들어간 잡채와 같이 조금 이상한, 조금 이상한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음식이란 맛있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좋은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라. 우리는 맛있을 수 있다. 누구도 만든적이 없지만 나의 입맛이 간절히 원하던 그런 평화로운 맛에 대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