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가 끝난 92년, 시험전에 약속했던 자전거 하이킹을,
화순으로 가기로 하고 친구들과 자전거포 앞에서 모였다.
자전거 다섯대를 빌리고, 전방에서 과자 몇봉지를 사고,
목적지인 화순 ㅡ지난해 소풍때 가본 경치좋은 곳 ㅡ을 향해 출발했다.
친구들과 함께가는, 시험끝난 홀가분한 마음,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길가에 핀 들꽃들, 지나치는 모든게 좋았다.
두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화순의 물 맑은 계곡과 자갈,풍경들이
우릴 더 기분 좋게 했다.
한참을 물장구 치고, 사진도 찍고, 사가지고 온 과자로 허기도 채우며 신나게 놀고
이제 가야할 시간, 해는 아직 중천이었다.
그래서였다.
"왔던 길로 가면 재미 없잖아"
누군가의 제안, 모두의 찬성.
야트막한 산길 하나 넘을때도 기분은 좋았다.
비포장 자갈길과 언덕인 산속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 갈때도 좋았다.
비록 점방 없어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거기가 어디쯤인지도 몰랐지만, 계속 달리다 보면 전방도, 화순도, 광주도 나올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자전거를 들고 갈수밖에 없는 공사중이던 길을 지나고, 또다른 산길 하나를 넘고, 수몰지구 찬 호수바람을 맞으며 흙자갈길을 지날때, 이러다 집은 갈 수 있을 까하는 두려움과 배고픔이 몰려왔다.
뭐라도 먹으면 두려움도 가실거 같은데 겨우 도착한 몇집없는 마을에도 역시 전방은 없었다. 식은땀 나게하는 배고픔이 용기를 냈다.
제일 배고픈 사람이 제일 용기가 나는 거라 내가 어느 집으로 들어 갔다.
아주머니 두세분이 계셨다.
"저기, 아주머니 저희가 광주에서 온 학생들인데요, 배가 너무 고파서요"
"어디? 광주? 아따 어린 사람들이 멀리서도 왔네이"
"밥 좀 주시면 안될까요? 저희가 암것두 못먹어서요"
"밥? 웜메 언능 방으로 들어와아"
주인 아주머니가 서둘러 차려주신 밥상엔 눌러담은 고봉밥과 김치 몇가지 그리고
붕어찌개 한솥이 있었다.
밥과 김치, 붕어찌개를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숟가락이 보이지 않게, 뱃속이 미어지도록 많이 먹었다.
순식간에 밥상위의 음식들이 자기눈 앞에서 없어지는 걸 보신 그 맘씨 좋은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따 자네들이 우리집 저녁밥 다 묵어부렀네이"
PS.
어찌어찌 도착한 화순에서 친구 어머니가 몰고온 트럭에 자전거와 몸을 싣고
광주로 가서 먼저 자전거포로 갔다.
자전거포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쭈그리고 담배 피고 계시다가
자전거 반납하러 온 우릴 보더니 정말 반갑게 웃으시며 맞아주셨다.
"나는 자네들이 자전거 훔쳐가븐줄 알았당께"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그날은 제일 맛있는 저녁밥을 먹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