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맛있었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토끼 간요.”
토끼 간을 맛본 곳은 할아버지 댁이다. 지금은 부산광역시로 편입된 기장군 임랑마을에 위치한 너른 집이었다. 옛날 시골집으로, 집 안에 외양간이 있었고 외양간 안에는 농사일 돕는 소 한 마리가 있었다. 그 표시로 대문 앞에는 항상 둥글 넓적한 쿠키 같은 소똥이 떨어져 있었다. 운동장만큼 넓은 마당에는 끝도 없이 뻗어있는 빨래줄을 Y자 긴 막대기가 중간에서 잡아주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다들 그 막대기로 빨래줄에 흔들흔들 거리다 막대기가 빨래줄에서 빠져버려 혼이 나곤 했다. 여물을 주기 위해 짚을 자르는 작두도 있었다. 손자 손녀들은 다들 짚을 서걱서걱 자르는 느낌과 소리가 좋아 앞다퉈 하려고 했는데 어른들은 당연히 항상 말리셨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누군가는 마당에서 빨래줄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손자손녀 중 가장 연장자인 나는 왜 내 사촌 중에는 또래가 없어 항상 이렇게 명절을 지루하게 보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누워있었던 걸 보면 설날이 아니라 추석이었나 보다. 그렇게 하릴없이 있는데 할머니께서 검은 조약돌같이 생긴 걸 내미셨다. 당시 어느 시골집에나 있던 스텐 그릇에 담아오셨다. 소금에 찍어먹으라며. 토끼 간이었다. 조금 전 나무하러 산에 갔다 오신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토끼가 들려있었나보다. 할머니께서는 그 중 간을 쪄 오셨던 것이다. 토끼간이니 당연히 몇 조각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맛은.. 과연 별주부가 고생을 할 만큼 대단한 맛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그럼 우리는 용왕이었나? 그래. 우리는 용왕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주부셨다. 용왕 모습에는 당연히 할아버지가 더 잘 어울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야 말로 오래 오래 사시도록 토끼간을 드셨어야 하는데, 열 살도 안 된 손자손녀가 토끼간을 먹게 하셨다.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는 남동생만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용돈도 남동생만 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만수무강할 수 있는 토끼간을 나와 여동생도 먹었던 걸 보면 우리도 조금은 사랑하셨나보다. 별주부는 돌아가셨지만 용왕은 건강하다. 다들 체력 좋고 감기 몸살 잘 안 하고 아파서 조퇴한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별주부셨다. 용왕님을 건강하게 하는 토끼 간을 찾아오는 임무에 성공한 별주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