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서울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였다. 고향에 있던 언니가 날보러 서울에 올라온다고 했다. 언니는 날 만나자마자 “우리 마로니에 공원 가보자”하는 것이었다. 왠 뜬금없는 마로니에인가 싶었지만 언니는 꼭 한번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공원에 도착한 후 벤치에 앉아서 언니가 싸온 김밥 도시락을 풀었다. 언니도 형편이 넉넉치 않아 단무지, 계란, 당근 이렇게 세 가지 재료만 달랑 들어있는 좀 빈곤한 김밥이었다. 언니와 한 두어개 주어먹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우리 앞에 짠 하니 모습을 드러내더니 냉큼 하는 말.

“김밥 좀 뺏어먹으려고 왔어요”

이렇게 말 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니 노숙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옷 하며, 감은지 한달은 된 듯 보이는 머리카락하며, 특히 ‘오늘 심심했는데 재미있는 일 생겼다’는 눈빛이 어리어 있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데 갑자기 언니가

“여기 있어유. 드세유”

하면서 우리가 먹던 김밥을 내미는게 아닌가! 놀란 나는 언니와 그 노숙인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노숙인의 눈동자안에 당황함이 가득 고이는게 보였다. 그 아저씨는 아마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거나 욕설을 하며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을 예상했었던 것 같은데 우리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언니는 그 아저씨가 우리가 내민 김밥을 쳐다만 보고 있자 부스럭 거리며 가방에서 다른 도시락통을 꺼내더니

“먹던거라서 안 먹는거에유? 여기 새거 있는디 그럼 이거 잡숴유”

하는 것이었다. 더 놀란 아저씨는 눈이 더 땡그라져서 그냥 우두커니 우리 앞에 서 있기만 했다. 그때 우리 옆에서

“거 뭐 재밌는 거 있나?”

하면서 다리에 목발을 짚은 다른 노숙인 동료가 우리 쪽으로 실실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리 앞에 서있던 노숙인 아저씨가 다른 노숙인 아저씨쪽으로 몸을 틀더니 온 힘으로 그를 밀어내는게 아닌가?

“저쪽으로 가! 저쪽으로”하면서.

 그 순간 나는 그 아저씨가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다른 동료를 쫓아내고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동료를 쫒아내고 다시 우리 앞에 선 아저씨. 다시 우리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아~ 재미없어서 김밥 안먹을래요”

 라고 하면서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언니는 서울에는 참 이상한 사람도 많다며 별일 없었다는 듯 다시 김밥을 오물거렸다.

그때 그 노숙인 아저씨~ 저희를 기억하시나요? 아저씨의 그 흔들리던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얘네 뭐야? 왜 나한테 김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거야? 하는 그 눈빛 말이죠. 당신의 그 눈빛이 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난다면 그때 그 세가지 재료 김밥을다시 한번 대접하고 싶네요. 그때는 차마 집어먹지 못했던 당신의 손가락이 이제는 당당히 김밥 두어개 냉큼 집어 입에 넣고 우작우작 씹어먹으며 씨익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82912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90985
221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합니다!<레디 액션! 그 최고의 원동력> moon9410 2012-01-12 13008
220 하늘같이 파란 맛, 초록처럼 푸른 맛 zmsqkdnl 2012-01-18 13013
219 참치 청국장의 반전 image jjs6862 2012-01-13 13014
218 <맛선물> 어머니표 사랑의 굴떡국 ambasa11 2013-01-05 13021
217 "돌돌돌" 돼지바베큐 ipuppy 2012-01-14 13027
216 [맛선물]목살이 전복을 껴안고 삼계탕에 빠진 날 jinfeel0506 2012-07-30 13027
215 할아버지는 별주부였다. lovelysoo 2012-03-21 13031
214 <맛선물 응모> 아빠와 까르보나라 tlflzzang 2012-07-26 13043
213 산딸기, 여름방학 그리고 카르페 디엠-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 clear123 2012-06-19 13044
212 다슬기 수제비의 추억 mkh903 2012-01-15 13056
211 [맛선물]수제비 asan1969 2013-01-11 13064
210 그건.... 사랑이었다 hheysoo 2012-02-28 13070
209 <사랑은 맛을 타고> 개밥그릇에 비빔밥 sisters08 2012-02-18 13075
208 그 아이 등판위의 짜장밥 summerbook 2013-01-12 13080
207 [맛 선물] 어른의 맛? gochu4 2013-03-05 13080
206 <사랑은 맛을 타고 -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 file jinsj1005 2011-10-18 13082
205 정성만 가득했던 음식 mikky005 2012-01-13 13084
204 배추전 먹는 시간 irichmom 2013-01-25 13139
203 강정평화대행진팀에게 내손으로 키운 옥수수를 hanna1004 2012-08-15 13144
202 사랑은 맛을 타고-생각지 못했던 일 satm350 2011-11-30 1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