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휑할 때 ‘호박죽’ 한그릇
어느덧 결코 늙지 않을 것 같았는데 4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한 내 안의 따뜻함을 밖으로 펼쳐 보이게 하는 힘의 근원에 감사함과 더불어 가슴에 행복감이 피어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의 고향을 산골처녀가 출세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지만,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그 어떤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 상자와 같다.
내 어릴 적 동네 또래는 여자만 12명이었다. 또래 친구가 많다보니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능하였다. 우리가 늘 놀던 놀이터는 동네 뒷산이었다.
아침밥만 먹고 부리나케 뒷산에 올라가면 친구들은 벌써 하나 둘 모여 있었다.
우리는 돌멩이를 주워 밥과 국을 만들고 솔잎. 나뭇잎. 흙으로 이불, 반찬을 만들어 배역을 정해 역할놀이를 하고, 자연 속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소꿉놀이를 하다보면 “미순아 밥 먹어라~”산 아래에서 하나 둘 부르면 친구들은 후딱 점심을 먹고 또 모여서 저녁 해질녘 무렵이 되면, 하나 둘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내 마음은 왜 그리 휑하니 서글퍼지는지…….
소꿉놀이에 빠져 재미있게 놀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이 싸우시는 집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는데…….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게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런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면 나를 따뜻하게 반겨 주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한결 수월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어깨가 축 쳐져서 들어갈 때면 할머니가 해 놓은 음식이 있었는데, 유독 호박죽이 만들어진 날은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노란색의 액체가 속으로 들어가면 뻥 뚫린 마음을 어찌 그리 살살 녹이는지…… 마음속 상처가 매워지는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 둘 곳 없는 우리를 정성을 다해 돌봐 주셨는데 조용하시고, 지혜로우신 할머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고,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 보게 하시면서, 한 번도 잘못했다고 말씀하지 않고, 다음에 잘할 수 있게 칭찬을 하셨다. 할머니 가르침에 조금씩 잘할 수 있는게 점점 많아졌다.
할머니의 많은 가르침속에 드뎌 ‘호박죽’을 쑤어서 가족들에게 먹이는데…….내 자신이 어찌나 대견해 보이고, 커 보이는지, 할머니는 물론 잘 만들었다는 칭찬도 같이.
세월이 흘러 세상을 살면서 지치고, 공허할 때면 ‘호박죽’을 쑤어서 내 마음을 위로한다. 나의 할머니가 가르쳐 주시던 방법대로……. 이내 마음은 사르르 녹고 평온함이 온 몸에 퍼지며, 따뜻해진다. 또한 그런 날이면 지금은 계시지 않는 할머니를 만나는 날이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