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보다 떡볶이

조회수 8736 추천수 0 2012.06.04 13:46:40

  2010년 1월15일에 결혼한 저는 결혼 2주 만인 1월 30일에 남편을 벨기에라는 낯선 나라로 유학을 보내야 했습니다.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참 힘들더군요. 남편을 보내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내가 결혼은 한 건지 만 건지 자꾸만 우울한 생각이 들어 세 달째 들어서면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양가 어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성능 좋은 전기밥통과 된장, 고추장, 김치에 김, 미역 등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주셨습니다. 너풀거리는 태국 쌀을 먹는다기에 쌀까지 조금 챙겼습니다.

 터질 듯이 짐을 꾸려 벨기에로 입성했는데 며칠은 정말 좋더군요. 엽서에서나 봤을 법한 건물들, 노천에 앉아 한가로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처음 타보는 트램. 그리고 먹을거리들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선 벨기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따끈따끈한 정통 와플과 초콜릿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벨기에 사람들이 와플보다 더 많이 먹는다는 프리트(감자튀김)와 홍합요리를 맛보고는 이곳이 나에게 꼭 맞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절 힘들게 하는 것은 벨기에의 날씨였습니다. 유럽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렇게 변덕이 죽 끓듯 한 곳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아침에 긴 팔에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나가면 점심쯤엔 점퍼를 벗고 팔을 걷어도 더운 날씨가 되고 오후에는 꼭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간절기면 꼭! 반드시! 감기에 걸려 된통 고생을 하고 넘어가는 체질인 저는 아니나 다를까 2주 만에 심한 열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열이 올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겠는데 헤롱헤롱 하는 머릿속에 왜 떡볶이가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제가 가져온 산더미 같은 짐 어디에도 떡은 없었습니다. 와플이니 초콜릿이니 그땐 단 것은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떡볶이 하나 못 먹는 것이 어쩜 그렇게 서럽던지 저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떡볶이를 먹어야 낫겠다는 저를 안쓰러워하며 곳곳에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벨기에 내에는 떡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떡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다행히 베네룩스까지 배송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보고 20유로의 배송비를 물어가며 떡볶이 떡과 어묵을 주문했습니다. 입금확인과 동시에 배송이 시작되어 이틀 반이 걸리더군요.

 남편은 인터넷으로 만드는 법을 찾아 제가 잠자는 틈에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양과 냄새가 그럴 듯 했습니다. 맛은... 사실 저의 남편은 매운 것을 못 먹습니다. 남편은 맵게 했다고 하지만 제가 먹기에는 조금 닝닝하더라구요. 그래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감기와 싸웠지요. 올 초 저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유명한 시장떡볶이며 유명 브랜드 떡볶이며 원 없이 사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닝닝하고 달짝지근했던 벨기에 떡볶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귀한 떡볶이를 또 맛볼 수 있을까요?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38856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45499
181 (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작)"밥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다" qaz1127 2012-05-14 8777
180 일곱살의 대오각성 file lmijin0477 2011-12-19 8786
179 생신상을 차려드리고싶은 딸 chow88 2012-07-20 8790
178 (사랑은 맛을 타고) 가마솥안의 달콤한 행복 kuruk 2011-10-14 8800
177 처음이자 마지막인 남편의 요리 ^^ pgydirs 2012-03-15 8802
176 아버지의 김치말이국수 file khje0826 2012-07-20 8806
175 제육볶음도 못 먹어 본 여자 yanxi798 2012-07-05 8822
174 <맛선물 응모> 아빠와 까르보나라 tlflzzang 2012-07-26 8832
173 <사랑은 맛을 타고>머나먼 금욕의 길 huriy 2012-07-09 8834
172 (맛선물)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엄마의 도너츠 omy99 2012-12-24 8836
171 <맛선물>처음 맛 보인 요리들 jpoem 2012-12-11 8841
170 할머니. 맛있게 잡수셔요 bujam1025 2012-07-23 8850
169 엄마를 위해 죽을 끓여본 적이 있나요? borinim 2012-08-03 8858
168 물에 만 밥과 왕자님 hwangsy74 2011-09-09 8877
167 <맛선물> 김칫독 가는 길 ksun3134 2012-12-10 8904
166 무서운 김장 561mh 2012-12-07 8916
165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혹은 선물한 맛 <내가 할머니가 되면> file ignatia 2012-08-01 8918
164 강정평화대행진팀에게 내손으로 키운 옥수수를 hanna1004 2012-08-15 8922
163 <맛선물> 어머니표 사랑의 굴떡국 ambasa11 2013-01-05 8923
162 한 겨울의 먹었던 꿩 요리 qkrgodtla 2012-05-11 8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