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점짜리 김치국
결혼식을 올리고 두 달 뒤 맞게 된 시댁의 첫 제사. 결혼 전 방문할때마다 손에 물한방울 안묻히게 한 시어머
님이 계셨기에 불량한 며느리는 안이한 마음으로 제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시어머님이 병을 얻으
셔서 집을 비우시게 되었고, 제사 준비는 '요리 0단'인 나의 몫이 되었다. 제사야 친척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다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아버님의 아침 상이었다. 시아버님은 아침식사 신경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며느리 된 도리로 그럴 수가 있나!
금요일 밤 근무를 마지고 찾아간 시댁. 여러 날 불을 켜지 않은 부엌에는 찬기만 가득했다. 늦은 밤 시골마을
엔 장 볼 곳도 마땅치 않았고, 나는 냉장고 문을 수십번 여닫으며 무엇으로 아침상을 차리려 하나 걱정 또 걱
정했다. 평상시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요리한 적이 손에 꼽는 탓에 아침상 차리기란 가히 '미션 임파
서블'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몇 년 전 어느 지인의 집에서 맛보았던 김치국이었다. 김치와 오뎅, 육수로만 끓였는데도
기가 막히게 시원했던 그 맛이 뇌리를 스쳤다. 김치 없는 집은 없으니 도전해보자 맘먹었고, 냉동실에서 얼린
돼지고기도 구했다. 그날 밤 나는 김치국 끓이다 국물을 다 졸여버리는 꿈을 꿨다.
다음날 아침 6시 반, 멸치다싯물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댕강댕강 썰어 넣고 끓인 국에 냉동실에 있던 생선을
구워 상을 차렸다. 아버지와 그 아들과 며느리, 무뚝뚝한 세 사람이 둘러앉아 국을 뜨고 생선 가시를 발랐다.
"아버님, 드실 만 하세요?" 라고 어렵게 여쭈니 "그래"라고 짧게 답하신 아버님은 국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상을 치우고 남편에게 물었다. "김치국 어땠어? 몇 점이야?" "80점!"
고군분투 속에 차린 시댁에서의 첫 밥상. 남편이 후하게 준 점수에 나는 자신있게 요리할 수 있는 '용기'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손주연 / jyeon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