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어 어깨가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계절이 오면, 나는 어두워지기 무섭게 집에 들어가 배추전을 만든다. 먼저 노란 배추잎을 깨끗이 씻은 다음, 걸죽하게 갠 밀가루로 옷을 입힌 후, 따끈따끈하게 달군 후라이팬에 가지런히 놓는다. 배추전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 접시에 담아 그 맛난 것을 죽죽 찢어 입안 가득 넣고 냠냠 기분좋게 먹는다.
배추전을 먹고 또 먹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몇 년동안 정미소를 운영하셨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많아 바쁘게 일하셨지만 정부에서 추곡수매를 많이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자 이웃사람들이 벼를 정미소에서 찧어 도시로 내다 팔지 않고 수매를 해 정미소에는 일거리가 줄어 들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 안돼자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사업은 실패하셨다. 그 해 겨울, 농사일을 다 마친 아버지는 땅을 한마지기라도 더 사기 위해 내가 모르는 먼 곳으로 일하러 가셨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그동안 아버지가 하시던 일은 당연히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빈들에 누워서 저희들끼리 얼굴 맞대고 있던 짚을 리어카 한가득 싣고 오셔서 반은 작두로 썰어 쇠죽을 끓이고, 반은 소가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외양간에 깔아 주셨다. 쇠죽과 짚을 먹고 배설한 소의 그 큰 똥을 리어카에 담아 멀리 떨어진 논에다 갖다 놓는 일도 엄마의 차지였다. 다른 많은 일보다 어머니를 힘들게 한 일은 산에 가서 나뭇가지와 마른 솔잎을 주워 오시는 일이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한가득 등에 지고 오셨는데 나는 혼자 집에 남아 "엄마 나무 하다 다치시면 어쩌나, 아버지도 안 계시는데" 걱정하다, 엄마를 마중 나가면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나뭇짐일 정도였다.
이런 날이면 엄마는 머리에 쓰고 오신 수건을 벗어 먼지를 탈탈 털어내시곤, 부엌 아궁이 앞에다 벽돌을 두 개 마주 세워 놓고 그 위에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 올렸다. 식용유가 비싸던 때라 무를 큰 도장처럼 잘라서 작은 그릇에 따로 담은 기름에 무도장을 넣었다 꺼낸 후. 솥뚜껑에 바르고 배추전을 부치셨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엄마가 좀전에 해오신 마른 솔잎을 조금씩 조금씩 넣어가며 배추전이 타지 않도록 불의 세기를 조절 하였다. 배추전이 다 익으면 엄마와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고소하고 담백해서 한 번 먹으면 자꾸자꾸 먹고 싶은 배추전을 먹고 또 먹었다. 마침 날마다 어머니를 독차지했던 장난꾸러기 동생들은 다 놀러 나가고 없었다.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앉아 먹는 배추전 맛은 꿈 속에서도 침을 삼키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마음이 초겨울 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 같던 날, 배추전을 먹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날 아궁이 앞에서 엄마가 드신 배추전에는 가난한 엄마로서 고달픔을 위로한 따뜻한 손이 들어 있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