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선물] 어른의 맛?

조회수 10585 추천수 0 2013.03.05 09:42:32

매해 여름, 어머니는 냄비 한가득 붉은 음식을 볶아내셨다. 차마 범접조차 할 수 없던 그 음식은 바로 닭발. 일 년에 딱 한 번, 닭발 볶는 날이 되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 있냐는 말만 반복했다. 차마 그 옆에 서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인 듯 닭발을 손질하는 엄마에게 멀찌감치 서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닭발을 정성스레 정리했다. 한평생 매니큐어조차 발라본 적 없는 엄마가 마치 매니큐어를 바르는 듯 조심스레 닭 발톱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흉악한 물건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정성을 들이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집 안 가득 매콤한 냄새가 가득 찰 즈음, 이모들도 하나둘 거실에 자리를 잡고 일 년에 한 번 있을 만찬을 즐길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서로의 팔이 닿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엄마 형제들의 만찬은 괴기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은 닭발을 한 손에 들고 누구는 쪽쪽 양념을 빨고 누구는 아드득아드득 소리를 내며 닭발을 씹었다. 네 명의 여자들이 둘러앉아 까르륵 까르륵 웃으며 닭발을 뜯어먹는 모습을 구경하는 모습이 솔찬히 재밌었고 능숙하게 뼈를 발라내는 이모들의 솜씨만큼이나 끝없이 이어지던 수다도 내가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였다.


어느 해에는 닭발 먹기에 도전했는데 새초롬한 사촌언니가 결혼 후 닭발 모임에 처음 참여한 날이었다. 자주 보지는 않았어도 큰이모의 말을 통해 비린 것도 질색, 깔끔하기 그지없는 언니라는 이미지가 내게 깊게 남아있었고, 그런 언니가 먹는 음식이니 나도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아뿔싸, 내가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울며 겨자 먹기로 닭발 하나를 꾸역꾸역 힘겹게 먹었던 기억이다. 오만상을 찌푸린 내게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아직은 맛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은 곧잘 닭발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그 말을 곱씹는다. 우두둑 한 입에 오늘 쌓인 스트레스를, 우두둑 또 한 입에 말 안 듣는 자식 걱정을 씹어 삼켰을 이모들. 그래서일까? 내겐 닭발은 어른의 맛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56595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62036
141 엄마의 손 맛. 최고의 동치미... cks419802 2012-06-07 10689
140 (사랑은 맛을 타고) 가마솥안의 달콤한 행복 kuruk 2011-10-14 10701
139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맛-마초같은 남자의 그 진한 맛, 조개양념구이 alexainkr 2012-07-20 10710
138 <맛선물> 엄마표 돼지불고기를 추억하다 gobunge 2012-11-28 10712
137 <사랑은 맛을 타고>터지기 일보 직전! qkrdmswkek 2012-06-18 10727
136 <맛 선물> 남편의 생선 file khhy66 2013-03-19 10730
135 [맛선물] 제발 받아줘 namij 2012-10-29 10742
134 (맛선물) 어릴적 내 멀미약은????...^^ Kim991241 2012-12-21 10744
133 한 겨울의 먹었던 꿩 요리 qkrgodtla 2012-05-11 10754
132 엄마, 장국 드시고 힘내세요! jnsoo711 2013-02-07 10763
131 맛선물 wang0827 2012-09-28 10768
130 맛선물<오묘한 빵맛에 취하니> chai1007 2013-02-22 10768
129 처음이자 마지막인 남편의 요리 ^^ pgydirs 2012-03-15 10781
128 눈물 & 콧물의 베트남 쌀국수 eurim 2012-03-18 10790
127 <맛선물> 진한 보말미역국 한 사발 my-lydia 2012-08-08 10794
126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과 누룽지<사랑은 맛을 타고 응모> erlove0314 2012-05-10 10821
125 할머니와 만두 shu95 2012-07-27 10822
124 [맛선물] 어머니 나물 잘 무쳐졌어요? slht86 2012-08-06 10836
123 <맛선물>"얘들아, 김밥이다." file viveka1 2012-08-24 10841
122 <맛 선물 > 사랑 담은 백김치 kimhj0703 2012-12-13 10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