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전 주부 초년시절 ,
음식맛도 맛이지만 식재료에 대해 거의 '개념없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삼계탕에 통마늘대신 빻은 마늘을 넣고 끓인 일이나 쌀을 불리지 않고 씻자마자 밥을 짓거나 하는... 등등
지금 생각하면 '무개념'이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땐 그러한 일상에
크게 불편함을 못 느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 한 가지,
첫아이 임신 초의 일이다.
누구나 하는 입덧이지만 내게도 먹는 음식에 변화가 생겼다. 냉면이 선호도 1위,
주로 외식으로 그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렸는데 어느날 시골에 있는 시댁을 가게 되었다.
역시나 ! 한 밤중에 참을 수 없이 냉면이 먹고 싶은 게 아닌가
거역할 수 없는 그 욕구!
모두가 잠든 그 시각에 주방 찬장을 뒤졌다. 이도 안 좋으신 시어머니가 냉면을 드실리 없건만 1%의 기대를 가지고,,..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른 냉면이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지 않은가 (그때는 당면처럼 마른 냉면도 슈퍼에서 팔았다)
그 때의 그 뿌듯함이란! 물을 끓이는 사이에 새콤!달콤! 매콤! 양념고추장도 만들었다.
삶은 면에 양념고추장을 얹어 빨갛게 비벼 드디어 한입,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면이 굵은 것도 이상하고 맛도 이상하고.. 그러나 그런걸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우선 울렁거리는 속을 채워야 했다.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나니 그 때야 머릿속에 든 생각, 당면이었구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랴. 못 먹을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한밤 중에 고 막무가내한 '입덧'을 가라않혔으니 그런 착각이 오히려 다행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