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계된 추억은 많지만 그 중 나의 아버지와 관련된 청국장을 떠올려보면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서글픔 같은 감정이 밀려오곤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즐겨먹게 되는 청국장, 추운 겨울에 몇 번씩 청국장을 끓이면서 늘 머릿속에 맴도는 그 기억. 여고생시절 아버지께 끓여드렸던 엉터리 청국장찌개에 대한 민망함을 이제는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여고시절.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지으시고 나는 도시로 나가 자취생활을 했다.
일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김치며 반찬이며 챙겨가곤 했는데 그날 어머니는 외출중이셨고 아버지 혼자만 계셨다.
집에 왔는데 졸지에 저녁을 해먹어야 되는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부엌에 들어가 뭘 해야 하나 기웃거리던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신 아버지께 가보니 끙끙 앓고 계셨다.
일이 힘드셨는지 몸살이 나셨던가 보다.
나는 뭘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는데 다리 좀 주물러 달라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땀냄새가 시큰하게 풍겼고 신음소리가 내 마음을 아프게 때렸다.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걸 참고 부엌으로 나와 저녁준비를 했다.
밭에 있는 아욱에 된장을 풀어 저녁상을 올렸다.
편찮으신 아버지께선 말없이 밥 몇 숟갈, 국 몇 숟갈 뜨시고는 그만 드셨다.
내가 끓인 아욱국을 먹어봤다. 엥? 이건 무슨 맛이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맛의 실체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청국장을 된장으로 알고 국에 풀었던 것!
된장과 청국장을 구분 못할 만큼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더군다나 아욱은 문지르지도 않고 그냥 집어넣었으니 그 맛의 착잡함은 지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아버지는 아셨을 텐데..입맛도 없는데 묵묵히 그걸 드셨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돌아보면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잠시 외국에서 살 때 우리집에 오신 아버지, “우리 딸이 음식 잘 못하는 줄 알았는데 뭐든지 맛있게 잘하더라” 하신다.
올해 아버지는 심장수술을 하시면서 생사를 넘나드셨고 지금은 호전돼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다. 곧 팔순생신이 다가오는데 무엇을 해드릴까?
또다시 청국장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부드러운 타이쌀에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 뚝배기 하나 올려드리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올해에는 꼭 하리라. 엉터리 청국장 말고 진짜 맛있는 청국장 끓여드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