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기분은 너무 이상했다. 참다못해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울어버렸다. 놀란 남편이 문을 두드렸다.
임신 8주, 평소에 잘 먹던 음식의 냄새까지도 싫었다. 랩을 정말 좋아하는 까만 얼굴의 옆 집 총각, 많이 풍만한 몸집의 앞 집 아주머니, 하지만 우리 둘 뿐이었다. 친정 엄마, 언니가 있는 한국이 아니었으니까…
말라가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요리책을 주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란다. 나는 대충 ‘미역냉채’를 선택하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었었나…. 남편이 빨리 나오라고 외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방문을 여는 순간 시큼한 냄새와 함께 식탁을 보니 무언가 차려져 있었다.
요리책 사진과는 비슷했다. 굵은 오이채 빼고는…. 이어 남편은 식초, 간장, 소금, 깨소금, 고춧가루를 하나씩 식탁에 올려 놓았다. 그리곤 ‘네 입맛대로 넣어서 먹어’ 하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를 한 건지, 해서 먹으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라면만 끓일 줄 아는 남편인지라 그의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다. 속으로 다짐했다. 짜든지, 맵든지, 시든지 다 참고 맛있게 먹기로…
그런데 내 입은 다짐 안 했나 보다. 먹는 순간 우~ 웨~ㄱ. 아까 맡은 식초 냄새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는 순간 난 다시 한 번 으~악 소리를 질렀다. 싱크대에 널브러진 엄청난 양의 미역을 본 것이다. 남편 왈, 요리책대로 미역을 물에 넣고 불렸단다.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미역을 통째로 전부 다…..
그 뒤로, 절대로 남편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 그냥 굶었다. 입덧이 사라질 때까지…
그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은 열 한살이 되었다. 나름대로 건강하고 씩씩하게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가끔씩 시무룩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곤 달력에 표시를 한다. 처음엔 그 표시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냥 친구들과의 약속에 관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연하게 달력을 보았고, 표시된 그 날이었다. 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금새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학교 급식식단의 ‘물미역 초무침’이 들어가는 날에 배가 아팠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난 아이에게 ‘미역냉채’에 관한 사건을 들려 주었고, 그 후론 꾀병도 사라졌다.
난, 지금도 미역냉채를 비롯한 새콤한 미역무침을 너무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식초, 물미역이란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돌린다. 비록, 뱃속에 있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이게 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