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일 아들이 입대했다. 몇 십 년만의 추위라던 날의 306 보충대, 눈으로 다져진 연병장에 아들과 우리 내외는 서있었다. 머리를 깎은 녀석의 모습이 낯설었다. 수천의 장정과 그 세 네 배수는 될 듯한 환송인파가 이별의 집단의식을 펼치는 생경한 소란이 연병장을 넘실거렸다.
전역한지 27 년, 돌이켜보면 나의 군대생활은 이제 환각처럼 다가온다. 저녁 어스름, 예외 없는 내무반 집합이 떨어지는 시간이면 세면장 수도 파이프에 허벅지를 맡기고 쓰러지지 않기를 빌어야 했던 통증이 먼저 몰려들었다. 선임과 후임의 동행으로서의 교감은 보이지 않았고 스스로의 고통을 먼저 피하기 위한 적의는 깊고 또 드셌다. 전시라면 죽음을 함께 넘나들 전우였으나 평시에는 선임과 후임의 사슬로 엮인 상대들일 뿐이었다.
기상나팔 소리 이전에 깨어 있어야 하며 가장 먼저 밥을 먹고 수돗가에서 선임을 기다리는 일과 설거지, 근무 전후의 보고 요령, 청소의 범위와 방법,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등의 지켜야 할 규율은 넘쳐났고 그 선의 경계에 선 것만 들켜도 집합의 폭력은 집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무반의 왕고참이 자대 배치 받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던 나와 동기를 불렀다. 근무복을 몸에 맞게 줄이기 위해서 부대 밖의 세탁소에 들러야 한다며 훈련소에서 받은 군복 한 벌과 위병소 근무를 위해 별도 지급받은 군복 한 벌을 챙겨 나오란 지시를 했다. 하늘같은 왕고참의 그림자를 밟을 새라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 세탁소에 들러 이리 저리 몸을 재고 옷을 맡긴 후 세탁소를 나선 우리를 끌고 그는 부대 뒤편의 중국집을 찾았다. 그때 맛 본 자장면의 단맛이란 어떤 수사도 형용을 허락하지 않는 언어 이외의 경지를 경험하게 했다.
맛은 정말 절대 미각을 지닌 이들이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숨 쉬기조차 힘들고 막막했던 이등병 시절,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왕고참이 선물해준 그 작은 여유가 세상에 지극한 맛을 선사했고 또 그와 다른 내무반의 고참들을 다시 보게 했고, 그들도 나와 같은 통과의례를 겪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무사하게 아들 녀석이 첫 100일 휴가를 나오는 날, 네가 두려워하고 너를 힘들게 하는 그들도 너와 같은 통과의례를 지나는 똑 같은 사람일 뿐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들려줄 이야기가 되길 빈다.
용인 수지 최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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