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우리가족은 한달일정으로 유럽여행을 나섰다
조그만 가게를 하는 남편은 365일 하루도 가게를 쉰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남편이 결혼 13년만에 거창하게 유럽여행을 제안했다. 결혼전부터 남편과 나는 결혼 10주년에는 기념여행을 하자며 적금을 하나 들어놓은 것이 있었는데 제법 여행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6학년인 아들과 5학년인 딸아이를 데리고 11월1일부터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을 여행하였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우리가족이 계획한 자유여행이었기 때문에 이동방법, 숙소, 식사까지 어느하나 쉬운것이 없었다. 유레일패스가 있어서 이동방법은 기차를 이용하고 숙소는 주로 한인민박을 이용했다. 식사는 아침은 민박집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가까운 빵집에서 샌드위치등 바게트를 사서 여행을 하며 먹었고 저녁은 여행하는 나라의 음식을 경험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강행군을 한 우리가족은 점점 지쳐갔지만 가족이 함께 있어 힘이 되었다. 여행일정 중반쯤 프랑스에서 로마로 이동했다. 야간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로마에는
오전 12시쯤 도착하게 되었다. 기차역 주변의 민박집을 이용하게 되어 짐을 끌고 약도를 가지고
민박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민박집은 찾기가 쉬웠다. 도착한 민박집에는 주인아저씨만 계셨는데
우리가족을 난민보듯 하셨다. 야간 침대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가족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식사여부를 물으셨고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못한 우리가족에게 선듯
아저씨께서 드실려고 하셨던 점심을 내어주셨다. 짐을 풀지도 않고 우리가족은 일제히 식탁앞에
앉았다. 식탁위에는 맛있는 열무김치가 놓여 있었다. '로마에서 열무김치라니' 의아해 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몇일전 주인아주머니께서 근교 공터에서 열무를 뜯어와 직접 담그신 것이라며
로마에도 열무가 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열무김치와 밥솥에 있는 밥을 남기지 않고 큰 양푼에
담고 고추장과 주인아저씨의 장모님이 한국에서 직접 짜서 보내주셨다는 귀한 참기름을 넣어
비비기 시작했다. 아들과 딸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나의 입안에는 침이 가득, 너무나 맛있는 열무비빔밥이었다. 허겁지겁 한가득 양푼에 있는 비빔밥을 해치운 우리가족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저를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난 뒤 딸아이가 하는말 " 엄마! 우리 거지같아 "
였다. 당연히 헝클어진 머리, 세수도 못한 얼굴, 큰양푼 하나에 수저 네개, 누가 봐도 우리가족은 ....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었던 유럽음식을 물으면 두말없이 로마의 열무비빔밥을
들었다. 그맛이 생각나서 가끔 열무김치에 밥을 비벼먹지만 로마의 열무비빔밥만큼의 맛은 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