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슬쩍 은은한 ‘맛 없는 맛’

박미향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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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샐러드

 

먹은듯 안 먹은듯 입안에 ‘자연’이 ‘아삭아삭’
최고의 야릇한 커플 ‘된장+국수’ 걸치면 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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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화옥>의 ‘마 샐러드’를 맛보곤 깜짝 놀랐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무색무취라고 할까. 향기 없는 이를 만난 듯, 매력 포인트를 찾아낼 수 없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은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맛보면서 이런 첫 느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발동이 늦게 걸리는 술꾼처럼 그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갔다. ‘마 샐러드’는 채 썬 생마를 김에 말아먹는다. 마만 살짝 간장과 고추냉이를 얹어 먹어도 된다. 아삭한 맛, 김을 둘렀을 때 변하는 맛, 마의 끈적끈적한 점성이 입안을 휘두르는 맛깔스러움…. 거기에서 나는 향내엔 자연이 묻어 있다.


약자의 생존법칙 열어놓은 자연의 미덕

 

Untitled-18 copy.jpg그 향기에 매료되어 알래스카 무스(사슴과의 포유류) 이야기를 마주앉은 이들에게 떠들었다. 알래스카 무스는 번식기에 수컷이 암컷을 지키면서 교미한다. 강한 수컷이 새로 등장하면 그야말로 수컷들은 피터지게 싸운다. 도저히 그 싸움에 낄 수 없는 약한 수컷은 괴롭다. 해결책이 있다. 센 놈들끼리 한참 싸우는 동안 살금살금 암컷들에게 다가가서 구질구질하게 교미해 버리고 떠나면 그만이다. 자연은 약자가 살길도 조금은 열어놓았다.

 

‘마 샐러드’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된장국수’도 별나다. 수제비 같은 면발이 된장을 푼 국수에 얼큰하게 담겨 나온다. 된장이 만난 최고의 야릇한 애인이다. 기교는 전혀 없다. 그저 좋은 물에 된장을 풀어 청양고추로만 매운맛을 냈다.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일어서기 전에 걸치는 메뉴다.

 

<개화옥>은 21세기 미술작품들을 건 갤러리처럼 현대적이다. 그 세련된 풍광 안에 우리네 투박한 요리를 담았다. 자연이 내려준 향기와 맛 그대로를 최대한 살렸다. 그래서인지 와인마저도 물 건너 들어온 술 같지 않다. 조금 비싼 가격이 아쉽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02)549-1459.

 

◆ 못 다한 이야기
 
주인 김선희(37)씨는 30년간 서울 압구정동에 산 토박이다. 자신 있게 압구정동에 <개화옥>을 연 이유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그는 이전에 패션 전문지 기자, 패션회사 홍보를 했던 이였다. 당연히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었다. 다만 ‘맛’을 좋아하는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했다. 서점에 가서 먹을거리로 돈을 번 음식 명문가들의 책을 읽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시장 조사도 했다. 다른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면서 맛을 보는 데만도 천만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했음에도 문을 연 지 첫 2년간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3년째 돼서야 ‘맛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은 예약을 해야만 할 정도로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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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옥수수 마늘 주전부리…주방 음식점 안과 밖 두 곳
 
이곳은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 전에 고구마, 옥수수, 마늘이 주전부리로 나온다. 와인을 가져가서 마실 수도 있다. 대신 와인 잔 값으로 3천원을 내야 한다. 그밖에 코키지(와인을 레스토랑에 들고 갔을 때 지불하는 요금)와 디캔팅(와인을 공기에 노출시켜 산화, 증발하게 하는 것) 비용 등은 무료이다.
 
<개화옥>은 주방이 2곳에 나뉘어 있다. 하나는 인근 오피스텔에, 다른 하나는 <개화옥> 안에 있다. 오피스텔 주방에서는 소스를 만들고 <개화옥> 주방에서는 육수와 요리에 들어가는 다른 재료들을 만든다. 한 요리가 완성되려면 두 주방의 작품이 합쳐져야 한다. 업무와 힘을 분산시킨다는 김씨 나름의 음식점 조직 관리 방식이다. 김씨는 이렇게 하면 요리사들의 부담도 덜어주는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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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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