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고문서 요리<1>/ 음식디미방<상>
밀보다 녹두, 닭보다 꿩, 소·돼지보다는 개가 주재료
뽕나무로 불때고 산앵두나무 같이 삶으면 야들야들
고서가 주는 매력에는 옛 향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넘기다보면 상상력이 날개를 편다. 머리에는 그 옛날 한 때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음식관련 고서도 마찬가지다. 한줄 한줄 읽다보면 혓바늘과 코털을 훅훅 건드리는 맛깔스러운 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하지만 식도락가들은 읽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들은 혀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다.
최초 한글요리서...가양주 제조법도 40여 가지
고서를 찬찬히 살피다보면 그 맛이 궁금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음식의 질감과 식감을 경험하고 싶다. 궁금증이 심해지면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고문서 요리책 따라 해보기’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그 첫 번째 도전으로 <음식디미방>을 골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는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지은이는 조선중기 인물인 장계향(1598~1680) 선생이다. 그가 300여년 전의 밥상을 흐드러지게 차려놨다. 146가지 조리법을 찬찬히 뜯어보면 ‘슬로우 푸드’ 세상이 따로 없다. 각종 식재료 다루는 법과 40여개가 넘는 가양주 제조법까지 다채롭다. 조선 중기 경상도 일대의 식문화를 잘 보여준다.
서예나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계향 선생은 19세에 석계 이시명과 혼인해 7남3녀를 키웠다. 아들 셋을 덕망 높은 학자로 키워낼 정도로 지혜로운 여성이었다.
곰발다닥요리 웅장, 개순대 개장...
‘개장’이라고 부르는 개순대 조리법도 눈에 띈다. 개고기 창자를 뒤집어 씻은 후, 만두소처럼 만든 개고기를 넣고 한나절 시루에 담아 찌면 된다고 적혀있다. 개고기는 물론 생강, 참기름, 진간장 등으로 양념한 것이다. 요즘도 시골장터에는 삐뚤거리는 글자로 ‘개고기 팝니다’라고 적인 입간판을 종종 볼 수 있다. 개고기는 논란의 대상이나 당시로는 이만한 영양식이 없었다. 개고기로 만드는 꼬치, 국, 찜 등의 음식도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노계나 질긴 쇠고기 부위를 잘 삶는 법도 있다. 뽕나무로 불때고, 산앵두나무를 같이 삶으면 연해진다고 한다. 참새, 청어, 숭어, 동아 등 장선생이 사용한 식재료의 폭은 넓다. 할머니가 옛날 얘기 들려주듯이 ‘쌀마 쓰마니라’(삶아서 쓴다) 같은 식의 표현은 정겹다.
낯설어서 호기심 불 댕겼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영양군청은 2007년께 원문과 현대어로 옮긴 내용을 담은 <음식디미방> 안내서를 발간했다. 그 책을 참고로 요리 초보자가 도전에 나서봤다. 초보자 수준의 눈대중이라서 부족함이 많다. 어쩌면 원본과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도전 음식은 ‘꿩고기 김치’다. 생경해서 호기심의 불을 댕겼지만 막상 만들려고 보니 ‘꿩’이 문제였다. 국내에도 꿩 전문농장이 있긴 하나 전문식당에 주로 납품한다. 가격도 꽤 비싸다. 번쩍 한 속담이 스쳐지나갔다. ‘꿩 대신 닭’. 이 속담은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한다’는 뜻이다. 옭다구나! 꿩고기 대신 닭고기를 골랐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영양군청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정리한 내용이다.
간이 밴 오이지의 껍질을 벗겨 속을 파내고, 가늘게 한 치 정도의 길이만큼 도톰도톰하게 썰어둔다. 간이 밴 오이지를 물에 담가 간을 우려낸다. 꿩고기를 삶아 그 오이지 길이로 썬다. 따스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같이 담아 삭혀 쓴다.
좌충우돌 도전기는 다음 편에.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출처 영양군청의 <음식디미방>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