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배 오묘하게 섞어 한 폭의 그림

박미향 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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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학인당 백씨 종가 한채
고종이 보내준 목수가 궁중양식으로 지어
맛나지 생합작 등 맛도 집 만큼 웅숭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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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문을 열자 마당에 큰 기와집이 반갑게 맞는다. 마당 한쪽에는 덩치 큰 개들이 멀끔히 쳐다보고 짖지도 않는다. 낯선 사람들이 자주 찾기 때문에 예사로 아는 모양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학인당’은 한옥체험을 하는 종가다. 조선시대 조광조의 제자였던 학자 백인걸(1497~1579)의 후손들이 살면서 운영하고 있다.
 
종부 고정환(79) 씨가 웃으면서 “뭐하러 내려와~, 별것도 없어~”라며 핀잔을 준다. 충청도 사투리와 비슷한 전라도 말이 정겹다. 그는 몇 년 전 본채 옆에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한 뒤에는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는다.

 
“먹을 게 거기서 거기지~ 다른 거 뭐시 있겄어~!”  
며느리 서화순(51) 씨가 옆에서 거든다. “어머니, ‘한채’ 있잖아요, ‘생합작’도 있고.” 그때서야 고씨는 “맞어 ‘느르미’도 있고 그라재”라고 말하며 웃는다. “김장철에 많이 해먹었지, 한채.” 고씨가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채 써는 손놀림이 여느 무형문화재 보유자 못잖아
 
한채는 추울 때 먹는다고 해서 ‘한채’, 차갑게 해서 먹는다고 해서 ‘한채’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장철 겨울 무가 주재료다. 겨울 무는 무 중에서 최고다. 맛은 달고 식감은 아삭아삭 살아 있다. 열량도 적고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생선회나 구이와 함께 먹으면 산성을 중화시킨다. 조상들이 생선조림에 무를 넣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뿌리에는 소화효소(아밀라아제)가 있어서 과식을 했을 때 먹으면 속이 시원하다.
 
이 댁의 한채는 무와 배를 오묘하게 배합한다. 채 썬 무와 배의 만남이다. 일단 무를 세로로 반토막 내고 채 썬다. 배도 납작하게 썰고 생강, 마늘, 밤도 글자가 비칠 만큼 가늘고 얇게 썬다. 종부가 파를 썬 뒤에 냉장고에서 석류를 꺼내 살펴본다. “으 못 쓰겠다. 맛이 안 나겠어, 색이 변했네” 한다. 고씨는 대신 붉은색을 내기 위해 피망을 채 썬다. 탁탁 채 써는 종부의 손놀림이 여느 무형문화재 보유자 못지 않다. 옆에서 지켜보던 며느리는 “석류 넣으면 아이들이 좋아해요, 빨간색이 나서 아주 예뻐요”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순서대로 넣는다. 중간 중간에 소금, 설탕, 식초, 깨소금 등을 넣어 맛을 낸다. “맛이 어떠? 겨울 무가 아니라서 어떨까 모르것네.” 고씨가 말한다. “어머니 괜찮네요, 맛나네요”라고 며느리가 맛본 소감을 밝힌다. 아삭아삭한 무의 식감이 잘 살고 단 배가 살짝 튀어나와 하늘을 나는 기분을 선물한다. 피망의 붉은색과 파의 녹색은 한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든다. 음식에 오방색을 넣어 만드는 우리 한식의 전통을 잘 살렸다. 여름에는 무 대신 오이를 써서 만든다고 한다.
 
이 댁에는 이렇게 소박한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집안에 있는 식재료를 살려 담백한 밥상을 만들지만 제사 때는 다르다. 귀한 것들을 만들어서 올린다. ‘생합(백합)작’이 그것이다. 생합작은 손가락 만한 크기의 백합을 사서 살을 파내 잘게 다진다. 다진 쇠고기, 당근, 표고버섯, 불린 다시마도 함께 버무려서 양념장에 재운 뒤에 살짝 볶는다. 이것들을 백합의 껍데기에 차곡차곡 넣고는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달걀을 부어 익힌다. 한 개씩 들고 작은 숟가락으로 파먹는 재미가 있다. 고단백질 영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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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처럼 예뻐해준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뚝뚝

 
“우리집은 ‘맛나지’가 있어.” 고씨가 말을 잇는다. 이름이 생소하다. 전주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맛나지’는 일종의 장조림이다. 지금의 장조림과는 다르다. 쇠고기를 손가락 반 만하게 썰어 불고기양념에 반나절 재워두었다가 통마늘을 넣고 간장, 꿀, 참기름 등을 부으면서 조려 만드는 음식이다. 오랫동안 보관하고 먹는다. 며느리 서씨는 “일종의 저장 음식이다”라고 설명한다. “양념장 만들 때 마늘, 깨소금 넣으면 안돼야”라고 고씨가 주의사항도 전한다. “예전에 집에서 만든 간장을 썼지, 3년이나 5년 묵은 거 썼어”라고 말한다. 손주들에게 밥반찬으로 주면 좋아라 했단다. 지금도 성인이 된 손주들이 서울에서 내려오면 꼭 이 ‘맛나지’를 찾는다.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손맛이 밴 음식이다.
 
종부의 고향은 경상도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내려와서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 종손 백정기(81) 씨와는 23살에 결혼을 했다. 백씨는 중앙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전쟁에 휘말렸다.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말한다. “(신랑이) 출세하는 것도 안 바랐어요, 그저 건강하게 일을 마치고 평범하게만 지내길 바랐지, 직장생활 할 때도 만날 아팠어”라고 고씨가 말한다. 백씨는 한동안 그 상처 때문에 고생을 했다. 38살 뒤늦은 나이에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서 정년퇴직까지 다녔다.
 
시대의 아픔이 콕콕 박힌 상처는 여러 세대가 지나도 오래가는 법. 지금 백씨는 몸이 좋지 않다. 그 곁을 고씨가 지키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인복이 많아, 훌륭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만났지, 시어머니는 딸처럼 예뻐해 주셨어”라고 말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난다. “우리 대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밥 먹이셨어, 편찮으실 때 외상값 갚으러 시장에 대신 나가니깐, 외상값 안 받아도 좋으니 빨리 나으셔야 한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고씨는 2004년 큰아들, 백정우(56) 씨가 내려오기 전까지 덩그런 고택을 홀로 지켰다. “먹고 입는  데보다 집 고치는 데 돈이 더 들었지, 비도 세고. 집을 지키려고 시집왔나 싶더라구”라고 말한다. 지금 고씨는 훨씬 홀가분해졌다. 아들과 며느리 덕분이다. 머무는 방 앞에는 고씨가 만든 작은 꽃밭이 있다. 돌멩이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울긋불긋한 꽃들을 심었다. 고씨는 ‘나만의 꽃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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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요인들이 영빈관으로 사용…주말엔 한옥체험

 
한참을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백정우 씨가 손을 잡아끈다. 아늑한 한옥, ‘학인당’ 곳곳을 소개시켜 준다. 백범 김구 선생이 묵었던 방에는 70년대 드라마에 나오는 오래된 자개농이 있고, 좁은 복도 선반에는 김추자 씨와 이미자 씨의 엘피판이 보인다. 이곳은 해방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이 영빈관으로 사용했었다. 백씨가 안내한 다락은 빛의 잔치다. 한옥의 격자 창틀을 뚫고 깊숙이 들어오는 빛은 다락방을 앨리스가 간 이상한 나라로 만든다. “이곳은 한옥체험을 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 중에 원하는 분들만 아침에 한번 공개합니다”라고 백씨가 말한다. 올해 초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찾기도 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학인당’(전북민속자료 제8호)은 백인걸 선생의 10대손인 백진석(진수, 1832~1906) 선생이 조선말기 흥선 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중건에 자금을 대면서 짓게 되었다. 고종이 감사의 뜻으로 청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궁을 짓는 목수를 부탁했다. 그의 아들 백낙중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 1905년부터 2년8개월 동안 지었다.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에 도입한 한옥으로 조선말 전통 건축기법을 잘 보여준다.
 
주말이면 한옥체험을 하기 위해 이 댁을 찾는 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신청을 하면 백씨가 만들어주는 깔끔한 채식 밥상을 받을 수 있다. 백 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인생의 시련을 아내와 함께 이겨냈다. 한동안 강진에 있는 백련사에서 머문 것이 힘이 되었다. 그때 사찰음식을 익혔다. 그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다. 다양한 세상살이를 겪은 이 답게 그는 겸손하다. “이 집을 지키기 위해 그런 일이 있었나봐요. 지키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라고 말한다. 그가 만든 정갈한 밥상이 ‘학인당’  만큼이나 우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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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 mh@hani.co.kr 


 
◈ 종부 고정환 선생이 알려주는 한채
 
1. 무 1/3을 세로로 길게 잘라 채 썬다.
2. 배 반개를 납작 썰기를 한다.
3. 마늘과 생강, 밤 한 두 개를 얇게 채 썬다.
4. 파를 손가락 마디 만한 길이로 자른다(머리 부분은 안 쓴다).
5. 석류를 까서 알갱이를 따로 둔다.
6. 그릇에 무를 넣고 굵은 소금을 조금 뿌리고 배를 섞는다.
7. 설탕을 뿌리고 마늘, 생강, 밤을 섞는다.
8. 깨소금, 식초를 뿌린다.
9. 파와 석류 알갱이(혹은 피망)를 넣어 버무린다.
10. 잣을 넣어 먹는다.

 글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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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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