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모래땅에만 자라 풍에 탁월한 나물
허균도 “사흘이 지나도 입 안에 향미” 찬탄

꿈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밤새 ‘내 지갑 돌리도’ 외치면서 어두운 꿈 속을 헤맨다. 낡아서 값어치 떨어진 지갑이라도 내 품에 있다가 사라지면 아쉽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둘째 치고 뭔가 뒤가 개운하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천 리, 백 리라도 가서 찾고 싶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지갑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아쉽다. 음식은 음식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뭔가 우리 영혼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 음식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어디론가 송두리째 뽑혀 없어져 버린 기분이다.
강릉향토음식연구회 2년간 바닷가 헤매다 찾아 재현
방풍죽이 그런 음식이다. 방풍죽은 예부터 강릉사람들의 먹을거리였다. 바닷가 모래땅에서만 자라는 방풍나물을 넣어 만든 죽이다. 그 맛이 얼마나 향기롭고 맛났으면 조선시대 미식가인 허균이 칭찬에 입이 말랐을까! 허균은 그의 책 <도문대작>에 “방풍나물로 죽을 쒀서 먹으면 입 안에 향미가 가득해 사흘이 지나도 가실 줄 모른다”라고 적었다. <증보산림경제>같은 고서적에도 방풍죽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풍을 막아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의서 <천금월령>(조선 세종 1445년에 1차 완성된 의서 <의방유치> 에 등장하는 의서)에는 ‘정월의 방풍은 사지풍을 치료해 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경희대 한의대 김남일교수는 “방풍은 지금도 한의사들이 중풍치료를 위해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재료”라고 말한다.
이 아련한 음식을 지금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니 가슴이 아프다. 올해 복간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전몽각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처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 다행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이어가는 방법이다. 요리법은? 방풍나물은 어디서 구하고? 길이 있다.
1998년 창립한 강릉향토음식연구회는 10년간 지역 음식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어부들도 만나 녹취하고 사라져가는 강릉 음식복원에 힘썼다. 강릉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도 받았다. 강릉향토음식연구회 고문 고은숙(52)씨는 <도문대작>의 기록을 보고 방풍죽 재현을 결심했다고 한다. “방풍나물을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2년간 해안을 헤맸어요. 몇 번 찾았는데 가서 보면 아닌 경우가 많았어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우연히 한 해수욕장에 갔다가 찾아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강릉시청에서 근무하다가 11년 전 퇴직하고 향토음식연구에 나선 이다. “과거에는 식문화 자체를 문화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들을 찾아내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현재 강릉향토음식연구회 회원은 26명이고 직업도 전업주부부터 전문요리사까지 다양하다. 1주일에 한번 ‘농촌 독거노인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마다 따스한 맛에 알싸한 맛까지
이런 노력 끝에 방풍죽은 2005년도에 세상에 나왔다. 요리법도 정리되었다. 회원들은 <솔향 담은 상차림>이라는 한 권의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던 방풍나물도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농가에서 소득 작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가까운 대형 마트나 슈퍼에 가면 요즘 볼 수 있다. 3~4천 원이면 푸짐하다.
연구회에서 알려준 대로 방풍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만드는 시간은 40분도 걸리지 않는다. 요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맛은? 사진집 <윤미네 집>을 보고 받았던 감동과 비슷하다. 윤미의 아빠, 전몽각 선생이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품을 떠날 때까지 26년 동안의 풍경을 찍었다. 밥알을 흘리는 코흘리개 윤미, 대학 졸업식에 환하게 웃고 있는 윤미,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심장의 세포가 호들갑떨면서 운다.
방풍죽은 바로 이 맛이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사진을 넘길 때 몰려왔던 은은하고 소박한 아버지의 사랑의 맛이 전해졌다. 그 따스한 맛에 살짝 독특한 맛이 더해졌다. 알싸한 맛이다. 이 알싸한 쓴 맛은 입안에 침을 더 고이게 하고 흐드러지게 핀 부드러운 밥알과 섞이면서 혀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애착이 가속화된다. 붉은 입술은 푸른 방풍나물을 속에 품고 세상을 가진 것처럼 뿌듯해 한다. 산자락이 통째로 입안으로 들어왔다. “으흠!!으으으흠” 탄성이 이어진다. 기력이 없는 노인이나 아픈 이들, 해장이 필요한 술꾼에게 제격이다.
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 mh@hani.co.kr

허균도 “사흘이 지나도 입 안에 향미” 찬탄

꿈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밤새 ‘내 지갑 돌리도’ 외치면서 어두운 꿈 속을 헤맨다. 낡아서 값어치 떨어진 지갑이라도 내 품에 있다가 사라지면 아쉽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둘째 치고 뭔가 뒤가 개운하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천 리, 백 리라도 가서 찾고 싶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지갑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아쉽다. 음식은 음식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뭔가 우리 영혼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 음식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어디론가 송두리째 뽑혀 없어져 버린 기분이다.
강릉향토음식연구회 2년간 바닷가 헤매다 찾아 재현

경희대 한의대 김남일교수는 “방풍은 지금도 한의사들이 중풍치료를 위해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재료”라고 말한다.
이 아련한 음식을 지금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니 가슴이 아프다. 올해 복간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전몽각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처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 다행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이어가는 방법이다. 요리법은? 방풍나물은 어디서 구하고? 길이 있다.
1998년 창립한 강릉향토음식연구회는 10년간 지역 음식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어부들도 만나 녹취하고 사라져가는 강릉 음식복원에 힘썼다. 강릉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도 받았다. 강릉향토음식연구회 고문 고은숙(52)씨는 <도문대작>의 기록을 보고 방풍죽 재현을 결심했다고 한다. “방풍나물을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2년간 해안을 헤맸어요. 몇 번 찾았는데 가서 보면 아닌 경우가 많았어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우연히 한 해수욕장에 갔다가 찾아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강릉시청에서 근무하다가 11년 전 퇴직하고 향토음식연구에 나선 이다. “과거에는 식문화 자체를 문화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들을 찾아내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현재 강릉향토음식연구회 회원은 26명이고 직업도 전업주부부터 전문요리사까지 다양하다. 1주일에 한번 ‘농촌 독거노인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마다 따스한 맛에 알싸한 맛까지
이런 노력 끝에 방풍죽은 2005년도에 세상에 나왔다. 요리법도 정리되었다. 회원들은 <솔향 담은 상차림>이라는 한 권의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던 방풍나물도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농가에서 소득 작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가까운 대형 마트나 슈퍼에 가면 요즘 볼 수 있다. 3~4천 원이면 푸짐하다.
연구회에서 알려준 대로 방풍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만드는 시간은 40분도 걸리지 않는다. 요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맛은? 사진집 <윤미네 집>을 보고 받았던 감동과 비슷하다. 윤미의 아빠, 전몽각 선생이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품을 떠날 때까지 26년 동안의 풍경을 찍었다. 밥알을 흘리는 코흘리개 윤미, 대학 졸업식에 환하게 웃고 있는 윤미,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심장의 세포가 호들갑떨면서 운다.
방풍죽은 바로 이 맛이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사진을 넘길 때 몰려왔던 은은하고 소박한 아버지의 사랑의 맛이 전해졌다. 그 따스한 맛에 살짝 독특한 맛이 더해졌다. 알싸한 맛이다. 이 알싸한 쓴 맛은 입안에 침을 더 고이게 하고 흐드러지게 핀 부드러운 밥알과 섞이면서 혀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애착이 가속화된다. 붉은 입술은 푸른 방풍나물을 속에 품고 세상을 가진 것처럼 뿌듯해 한다. 산자락이 통째로 입안으로 들어왔다. “으흠!!으으으흠” 탄성이 이어진다. 기력이 없는 노인이나 아픈 이들, 해장이 필요한 술꾼에게 제격이다.
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 mh@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