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도 국도 아닌, 냉정과 열정 사이

박미향 2010.05.11
조회수 7812 추천수 0
이재 황윤석 전주 종가 무찌개
쫄깃한 쇠고기와 아삭한 무의 40년 궁합
가마솥밥 끓을 때 익힌 간조기찜도 예술

 
rain_44589_57458_ed.jpg

 뚝딱뚝딱,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무찌개’와 ‘간조기찜’은 빠른 시간에 식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무찌개’는 이름도 낯설다. 무조림도 아니고 무국도 아니고 생채무무침도 아닌 이 음식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무찌개’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었다. 찬 생채무무침과 비슷한 모양의 무들이 뜨거운 무국 안에 소담하게 들어앉은 모양이다. 국어사전에는 ‘무찌개란 무에 고기, 파, 간장, 기름 따위를 넣고 한데 섞어서 밥에 쪘다가 끓인 반찬’이라고 설명돼 있다.
 
 미식가 시아버지 입맛 맞추다 보니 솜씨 저절로
 
 조선 후기 호남 실학의 거목 이재 황윤석(1729~1791)의 7대손이자 서예가인 황욱(1898~1993)의 종가에서는 밥에 찌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가 주인공인 ‘찌개’다. 그의 며느리 전인주(72)씨가 손님이 찾아오면 자주 내는 음식이다. 쇠고기를 잘게 자르고 무도 길게 채를 썬다. 소금은 넣지 않고 집간장으로만 간을 한다. 끓이는 시간이 중요하다. 알맞은 시간에 끓여내야 쇠고기의 쫄깃한 질감과 아삭한 무의 격이 살아남는다. 전씨의 40년 넘는 ‘감’이다.
 이재 황윤석 전주종가는 둘째였던 황욱이 고향인 전북 고창을 떠나 전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 종가다. 고창에는 맏아들의 자손들로 이어지는 종가가 있다.
 

rain_15705_78916_ed.jpg

  ‘간조기찜’은 가을에 구입한 조기를 소금에 3개월 동안 재워두었다가 이듬해 꺼내서 쪄먹는 음식이다. 예전에는 가마솥에서 익혔다. 무슨 소리냐고요? 가마솥에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때면 ‘훅’ 하고 끓어오른다. 이때 물을 살짝 넣은 간조기 냄비를 넣는다. 밥이 되는 동안 조기도 함께 익는다.

 전씨는 “아버님이 좋아하셨어요. 찜을 하지 않고 말려서 밥반찬으로도 자주 드셨어요”라고 말한다. 전씨의 소문난 음식 솜씨는 오로지 시아버지 때문이다. 평소 미식가인데다가 예민한 혀를 가진 시아버지의 입맛을 맞추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었다. 95살까지 장수한 황욱의 밥상은 그야말로 건강식이다. 그는 튀긴 음식은 전혀 먹지 않았고 찐 음식만 먹었다고 한다. “하루에 깨죽이나 잣죽 한 끼는 꼭 드셨고요, 제철 음식을 담백하게 만들거나 식재료의 자체의 맛을 살린 음식을 특히 좋아하셨어요.”
 
 “여성은 50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돼요”
 
 황욱은 좌익활동을 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큰아들과 이산가족이 된 둘째아들 때문에 평생 속앓이를 했지만 건강만은 지켜냈다. 밥상 덕분이다. 국악 활동을 했던 셋째 아들 황병근(78)씨는 아내 전씨의 공이라고 말한다.
 전씨는 지금 ‘한국전례연구원 전북예절원’ 원장을 하면서 대학이나 기업체에 예절강의를 하고 있다.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정열적이다. 큰 시숙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한동안 백수였던 남편 황병근씨를 대신에 집안을 지켰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3남1녀를 키웠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요. 돈이 없어서 남의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살 때도 믿음은 변함이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rain_44417_109863_ed.jpg


 그는 시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황욱이 큰아들을 살리기 위해 나선 일들을 이야기한다. “매일 경무대(지금 청와대)에 당신의 서예로 쓴 탄원서를 보내고 그 앞에 출근하다시피 하셨어요.” 당시 집권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우연히 경무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황욱을 발견하고서야 그의 탄원서를 읽었다. 그 탄원서 덕분에 큰아들 황병선씨는 사형을 면했고 윤보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안타깝게도 출소한 후 4년 만에 그는 사망했다.
 황욱은 북에 있는 둘째아들도 그리워했다. 김대중정권 때 겨우 화상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이미 황욱은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다. “그 모든 시련을 서예로 이겨내신 분이었죠, 아버님 글자 한 점 받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섰죠. 살아계실 때도 초청 서예전을 많이 하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후배들이 회고전을 열어 주었어요”라고 말한다. 1999년에 황씨 부부는 집안의 유물과 황욱과 관련된 유품 5200점을 전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황병근씨는 연좌제가 풀린 후에 ‘전라북도 도립 국악원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 지회장’ 등을 지냈다. 끈질기게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관현악단을 운영하고 국악 활동을 한 덕분이었다.
 전씨는 “여성은 50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방긋 웃는다. 그의 무던한 웃음과 ‘무찌개’가 함께 어우러져 전주 한옥의 마당 한쪽이 평화롭다.
 
 
  ◈ 전인주씨가 알려주는 ‘무찌개’와 ‘간조기찜’
  1. 쇠고기 살코기를 얇게 썬다.

  2. 무는 살코기보다 배로 많은 양을 길게 채 썬다.
  3. 양파, 파, 마늘을 얇게 썬다.
  4. 모두 섞고 간장과 참기름을 뿌린다.
  5. 물을 아주 조금 붓고 끓인다. 팔팔 끓으면 물을 조금 더 넣는다. 끓이는 시간이 중요하다.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906/f93/trackback
List of Articles

무인줄 알았더니 배내, 사랑도 이랬으면!

  • 박미향
  • | 2010.05.20

<구암모꼬지> 배깍두기 음식도 연애도 허겁지겁 서둘면 제맛 몰라 강약 조절해 굽던 ‘맥적’ 탱탱하게 ‘재탄생’   껍질을 벗긴 무와 배를 깍둑썰기를 해서 그릇에 담아두면 어떤 것이 무인지 배인지 알 수가 없다. 맛을 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힘들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멀쩡해 보이는 상대방도 가까이에서 ‘맛을 보지’ 않으면 달콤한지 시원한지 담백한지 알 수가 없다...

조림도 국도 아닌, 냉정과 열정 사이

  • 박미향
  • | 2010.05.11

이재 황윤석 전주 종가 무찌개 쫄깃한 쇠고기와 아삭한 무의 40년 궁합 가마솥밥 끓을 때 익힌 간조기찜도 예술 뚝딱뚝딱,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무찌개’와 ‘간조기찜’은 빠른 시간에 식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무찌개’는 이름도 낯설다. 무조림도 아니고 무국도 아니고 생채무무침도 아닌 이 음식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무찌개’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었다...

잃어버린 맛 방풍죽, 홍길동도 먹었을까

  • 박미향
  • | 2010.04.28

바닷가 모래땅에만 자라 풍에 탁월한 나물 허균도 “사흘이 지나도 입 안에 향미” 찬탄 꿈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밤새 ‘내 지갑 돌리도’ 외치면서 어두운 꿈 속을 헤맨다. 낡아서 값어치 떨어진 지갑이라도 내 품에 있다가 사라지면 아쉽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둘째 치고 뭔가 뒤가 개운하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천 리, 백 리라도...

무와 배 오묘하게 섞어 한 폭의 그림

  • 박미향
  • | 2010.04.27

전주 학인당 백씨 종가 한채 고종이 보내준 목수가 궁중양식으로 지어 맛나지 생합작 등 맛도 집 만큼 웅숭 깊어 초등학생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문을 열자 마당에 큰 기와집이 반갑게 맞는다. 마당 한쪽에는 덩치 큰 개들이 멀끔히 쳐다보고 짖지도 않는다. 낯선 사람들이 자주 찾기 때문에 예사로 아는 모양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학인당’...

욕심은 빼고 웃음꽃 양념에 기도로 간 맞춰

  • 박미향
  • | 2010.04.16

정각사 절음식 도도할 만큼 정갈하고 슴슴한 무심의 맛 있어야 할 맛은 다…위궤양·아토피 ‘싹~’ 헉헉, 성북구 삼선동 언덕을 넘자 작은 절이 나온다. 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나무도 노래하는 새도 없다. 삼선동에 자리 잡은 사찰 정각사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있다. 사람이 숲이다. 대문 앞에 서면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

식혜도 아닌 것이, 식해도 아닌 것이

  • 박미향
  • | 2010.04.13

강릉 창녕 조씨 포식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짭짜름한 밥도둑 씨종지떡이나 묵나물도 이름만큼 오묘 ‘포식혜’ 이름이 낯설다. 한국전통음식을 연구한 조리서에서도 보기 드문 이름이다. ‘식혜’하면 쌀밥을 엿기름물로 삭혀서 만든 우리나라 화채가 떠오른다. 음료가 별로 없던 시절 어머니는 얼음 동동 띄운 달짝지근한 식혜를 만들어주셨다. 우리네 훌륭한 마실거리였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 가난해서 납작했던 추억의 맛

  • 박미향
  • | 2010.04.01

 대구 명물 납작만두  눈으로라도 배 부르라고 크기 부풀린 지혜 응큼한 작업 만두가게 주인 고려 가사 등장   가난한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일명 ‘뽑기’라고 불렀던 달고나나 설탕과자, 어머니 몰래 집어먹었던 생쌀 등. 아련한 추억이 있다. ‘납작만두’도 그런 음식이다. 대구가 고향인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납작만두’가...

오래 묵은 사랑처럼 먹을수록 고소

  • 박미향
  • | 2010.03.30

오리 이원익선생 종가 호박죽 대이은 검소, 모든 음식 집에 있는 재료로 배추에 생태 꼭꼭 눌려 넣은 김치는 ‘별미’ 봄은 아직도 멀었나 보다. 꽃바람 대신 3월에 꽃샘 눈보라가 친다. 영원히 봄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아 공포스럽다. 싸락눈이 하늘을 덮은 3월 중순 서울에서 1시간가량 거리에 있는 경기도 광명시 ‘충현박물관’을 찾았다. 물어물어 가는 길은 팀 버튼의 ‘...

270살 씨간장이 맛의 씨 뿌린 ‘서커스’

  • 박미향
  • | 2010.03.16

파평 윤씨 명재 윤증 종가 떡전골 뚝배기보다 장맛, 버선발 한지 붙인 ‘꿀독’의 묘기 참기름 재운 게장은 아~!…쓱쓱 비벼먹으면 꿀맛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 신뢰, 가족, 연인, 정의, 부, 명예…? 사람마다 다르다. 삶은 그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 나서는 여행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해답은 언제나 롤러코스트 같다. 우리 맛...

1940년대 홍콩의 피는 이리도 두껍더냐

  • 박미향
  • | 2010.03.08

베이징덕에서 딤섬까지 <미슐랭>의 별을 찾아 떠난 홍콩 미식여행 젊고 예쁜 심부인은 오늘도 자신이 고용한 천재요리사 이삼을 괴롭힌다. “내가 먹고 싶은 고기가 뭘까? 그것으로 맛있는 것을 해와!” 말도 안 된다. 언제부터 요리사가 독심술까지 갖추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속살이 비칠 듯 말 듯 하늘하늘 늘어지는 긴 날개옷을 입고 팔랑팔랑 다가와 맛난 거 해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