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모꼬지> 배깍두기
음식도 연애도 허겁지겁 서둘면 제맛 몰라
강약 조절해 굽던 ‘맥적’ 탱탱하게 ‘재탄생’

껍질을 벗긴 무와 배를 깍둑썰기를 해서 그릇에 담아두면 어떤 것이 무인지 배인지 알 수가 없다. 맛을 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힘들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멀쩡해 보이는 상대방도 가까이에서 ‘맛을 보지’ 않으면 달콤한지 시원한지 담백한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맛’을 가진 이를 찾아야 한다. ‘내 맛’과 잘 맞는 이와 짝을 이룬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한잔의 샴페인도 궁합이 잘 맞는 굴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상 음식을 만났는가! 결혼이라는 일생에서 중차대한 일을 치르기 전에 반드시 ‘맛보기’과정이 필요하다.
편견처럼 양념도 지나치면 딴 맛…속궁합도 따져보고
우선 편견을 버려야 한다. 내 마음대로 양념을 쳐서 맛보면 본래의 맛을 알 수가 없다. 배와 무에 소금이나 설탕을 치면 맛의 구별이 힘들다.
사랑에 굶주리고 있을 때 맛보는 것도 좋지 않다. 판단하기 힘들다. 허기질 때 먹는 음식은 쓰레기도 맛있다. 배가 채워졌다는 느낌만으로 충만감을 느낀다. 후회가 뒤따른 수도 있다.
다음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느리게 먹기’는 건강에 필수조건이다. 상대방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나와 맞는 지를 꼼꼼히 따져야한다. ‘속궁합’도 챙겨봐야 할 ‘맛보기’과정이다. 이왕이면 잘 맞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들은 한 농가 맛집에서 맛본 음식 때문에 들기 시작한 것들이다. 당연히 ‘무’인지 알고 맛을 봤는데 ‘배’여서 깜짝 놀라게 한 먹을거리였다. 그야말로 반전이다.
주인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농가 맛집 <구암모꼬지>의 식탁에 오른 배깍두기이다. 재료가 배일뿐 만드는 법은 일반 깍두기와 같다. 그 맛은 독특하다. 배깍두기는 고춧가루가 버무려진 매콤한 맛의 날개를 달고 달디 단 배즙을 혀 안에 뿜어낸다. 신씨는 “남양주시는 배가 유명해요. 그 배로 담가봤어요. 색다른 맛이라서 오시는 분들이 아주 좋아하셔요”라고 말한다.

반쯤 굽다가 찬물에 담갔다 다시 익히면 사르르
이 농가 맛집은 신은정(50)씨가 운영하는 음식체험장이다. 그는 2004년까지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회를 4년간 이끌었던 이다. 남양주향토음식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음식을 연구했다. 그가 만든 ‘구암모꼬지’에서는 ‘맥적’과 ‘약고추장’, ‘고종쌈밥’ 등 다양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맥적’,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주 친근한 음식이다.
“옛날 옛적” 고구려시대 음식인 맥적은 우리가 좋아하는 너비아니와 불고기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만드는 법 때문이다. 쇠고기를 양념에 절인 후에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 먹었다. 이 음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설하멱’(雪下覓)으로 발전했다. ‘설야멱’(雪夜覓)이라고도 불렀다. 눈 아래서 먹었다고 해서, 눈 오는 밤에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동죽지>에는 “설하멱은 개성부의 명물로 쇠갈비나 염통을 기름 등으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구어 익으면 눈 오는 겨울밤의 술안주에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여 맛이 좋다”라는 기록이 있다. 불 조절이 쉽지 않던 시절 익지 않고 겉만 타는 것을 염려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숨어있다. 찬물에 넣었다가 익히면 타지 않고 연하게 익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이 음식을 신은정씨는 왜 살렸을까? 2007년 농업진흥청은 전국의 9곳을 ‘농가맛집’으로 선정했다. 향토자원화사업의 일환이었다. 신씨는 농가 맛집 계획서를 만들어서 제출했고 채택이 되었다. 그 계획서에는 ‘맥적’이 있었다.
그가 재현한 ‘맥적’은 된장과 돼지고기를 이용한 것이다. 된장을 푼 물에 달래, 부추, 마늘을 다져서 넣고 그 물에 돼지고기를 재워두었다가 굽는다. 뜨거운 여름날 수영장 물 위로 튀어 오르는 공처럼 탱탱한 맛이다. 숯불이 선사한 냄새는 침을 고이게 하는 독특한 향이다. 이 맥적을 쌈 채소와 함께 먹으면 ‘고종쌈밥’이 된다.

다진 쇠고기와 갖은 양념 들어간 약고추장은 밥도둑
신씨는 “고종께서 예전에 쌈밥과 약고추장을 좋아하셨다고 해요. 남양주시 채소는 신선하고 깨끗하죠. 물이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죠” 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신은정씨와 남편 이상연(56)씨가 재배하는 것들이다. 신씨는 식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 약고추장은 다진 쇠고기와 갖은 양념이 들어가서 단 듯 매콤한 듯 묘한 맛을 낸다. 이 고추장만으로도 밥 한 끼가 후딱 해결된다.
지난 달 이곳을 찾은 한채리(36)씨의 가족은 마냥 즐겁다.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요리를 좋아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겁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요리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신기해해요”라고 덧붙인다. 뿌연 연기 속에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맥적이 완성이 되면 한상 떡 하니 차려진다. <구암모꼬지>에서 준비한 향긋한 반찬들이 식탁에 오른다. 식탁 한쪽에 새침한 배깍두기도 등장한다. 겉모양만 보면 무인지 배인지 모르는 깍두기다. 한 젓가락 먹는 순간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인생의 지평이 넓혀진 느낌이 든다. 마치 사랑처럼. 사랑의 경험이 많을수록 삶의 깊이는 넓어진다. ‘무’든 ‘배’든 자신에게 맞는 ‘사랑’이면 그 맛은 최고다.
‘모꼬지터’는 여러 사람이 놀이나 잔치 따위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 농가체험행사는 철에 따라 다양하다. 쑥개떡만들기, 옥수수심기, 송편 빚기, 토마토 따기 등. 누리집이나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www.mokkojiteo.com/031-511-7752)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 mh@hani.co.kr
음식도 연애도 허겁지겁 서둘면 제맛 몰라
강약 조절해 굽던 ‘맥적’ 탱탱하게 ‘재탄생’

껍질을 벗긴 무와 배를 깍둑썰기를 해서 그릇에 담아두면 어떤 것이 무인지 배인지 알 수가 없다. 맛을 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힘들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멀쩡해 보이는 상대방도 가까이에서 ‘맛을 보지’ 않으면 달콤한지 시원한지 담백한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맛’을 가진 이를 찾아야 한다. ‘내 맛’과 잘 맞는 이와 짝을 이룬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한잔의 샴페인도 궁합이 잘 맞는 굴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상 음식을 만났는가! 결혼이라는 일생에서 중차대한 일을 치르기 전에 반드시 ‘맛보기’과정이 필요하다.
편견처럼 양념도 지나치면 딴 맛…속궁합도 따져보고
우선 편견을 버려야 한다. 내 마음대로 양념을 쳐서 맛보면 본래의 맛을 알 수가 없다. 배와 무에 소금이나 설탕을 치면 맛의 구별이 힘들다.
사랑에 굶주리고 있을 때 맛보는 것도 좋지 않다. 판단하기 힘들다. 허기질 때 먹는 음식은 쓰레기도 맛있다. 배가 채워졌다는 느낌만으로 충만감을 느낀다. 후회가 뒤따른 수도 있다.
다음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느리게 먹기’는 건강에 필수조건이다. 상대방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나와 맞는 지를 꼼꼼히 따져야한다. ‘속궁합’도 챙겨봐야 할 ‘맛보기’과정이다. 이왕이면 잘 맞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들은 한 농가 맛집에서 맛본 음식 때문에 들기 시작한 것들이다. 당연히 ‘무’인지 알고 맛을 봤는데 ‘배’여서 깜짝 놀라게 한 먹을거리였다. 그야말로 반전이다.
주인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농가 맛집 <구암모꼬지>의 식탁에 오른 배깍두기이다. 재료가 배일뿐 만드는 법은 일반 깍두기와 같다. 그 맛은 독특하다. 배깍두기는 고춧가루가 버무려진 매콤한 맛의 날개를 달고 달디 단 배즙을 혀 안에 뿜어낸다. 신씨는 “남양주시는 배가 유명해요. 그 배로 담가봤어요. 색다른 맛이라서 오시는 분들이 아주 좋아하셔요”라고 말한다.

반쯤 굽다가 찬물에 담갔다 다시 익히면 사르르
이 농가 맛집은 신은정(50)씨가 운영하는 음식체험장이다. 그는 2004년까지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회를 4년간 이끌었던 이다. 남양주향토음식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음식을 연구했다. 그가 만든 ‘구암모꼬지’에서는 ‘맥적’과 ‘약고추장’, ‘고종쌈밥’ 등 다양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맥적’,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주 친근한 음식이다.
“옛날 옛적” 고구려시대 음식인 맥적은 우리가 좋아하는 너비아니와 불고기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만드는 법 때문이다. 쇠고기를 양념에 절인 후에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 먹었다. 이 음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설하멱’(雪下覓)으로 발전했다. ‘설야멱’(雪夜覓)이라고도 불렀다. 눈 아래서 먹었다고 해서, 눈 오는 밤에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동죽지>에는 “설하멱은 개성부의 명물로 쇠갈비나 염통을 기름 등으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구어 익으면 눈 오는 겨울밤의 술안주에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여 맛이 좋다”라는 기록이 있다. 불 조절이 쉽지 않던 시절 익지 않고 겉만 타는 것을 염려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숨어있다. 찬물에 넣었다가 익히면 타지 않고 연하게 익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이 음식을 신은정씨는 왜 살렸을까? 2007년 농업진흥청은 전국의 9곳을 ‘농가맛집’으로 선정했다. 향토자원화사업의 일환이었다. 신씨는 농가 맛집 계획서를 만들어서 제출했고 채택이 되었다. 그 계획서에는 ‘맥적’이 있었다.
그가 재현한 ‘맥적’은 된장과 돼지고기를 이용한 것이다. 된장을 푼 물에 달래, 부추, 마늘을 다져서 넣고 그 물에 돼지고기를 재워두었다가 굽는다. 뜨거운 여름날 수영장 물 위로 튀어 오르는 공처럼 탱탱한 맛이다. 숯불이 선사한 냄새는 침을 고이게 하는 독특한 향이다. 이 맥적을 쌈 채소와 함께 먹으면 ‘고종쌈밥’이 된다.

다진 쇠고기와 갖은 양념 들어간 약고추장은 밥도둑
신씨는 “고종께서 예전에 쌈밥과 약고추장을 좋아하셨다고 해요. 남양주시 채소는 신선하고 깨끗하죠. 물이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죠” 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신은정씨와 남편 이상연(56)씨가 재배하는 것들이다. 신씨는 식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 약고추장은 다진 쇠고기와 갖은 양념이 들어가서 단 듯 매콤한 듯 묘한 맛을 낸다. 이 고추장만으로도 밥 한 끼가 후딱 해결된다.
지난 달 이곳을 찾은 한채리(36)씨의 가족은 마냥 즐겁다.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요리를 좋아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겁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요리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신기해해요”라고 덧붙인다. 뿌연 연기 속에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맥적이 완성이 되면 한상 떡 하니 차려진다. <구암모꼬지>에서 준비한 향긋한 반찬들이 식탁에 오른다. 식탁 한쪽에 새침한 배깍두기도 등장한다. 겉모양만 보면 무인지 배인지 모르는 깍두기다. 한 젓가락 먹는 순간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인생의 지평이 넓혀진 느낌이 든다. 마치 사랑처럼. 사랑의 경험이 많을수록 삶의 깊이는 넓어진다. ‘무’든 ‘배’든 자신에게 맞는 ‘사랑’이면 그 맛은 최고다.
‘모꼬지터’는 여러 사람이 놀이나 잔치 따위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 농가체험행사는 철에 따라 다양하다. 쑥개떡만들기, 옥수수심기, 송편 빚기, 토마토 따기 등. 누리집이나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www.mokkojiteo.com/031-511-7752)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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