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작성한 기사입니다.
경남 김해 산애딸기와인지난해 방문해 ‘존경합니다 성공바랍니다’ 글남겨
따르자 마자 ‘풀냄새’…탄닌 적고 신맛·쓴맛 강해
“술을 좋아하셨나요?” “즐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청와대에 계실 때 만찬이 있으면 건배주로 막걸리나 우리 술을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김경수 비서관이 전하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 산딸기와인을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의 고급와인을 드셔보셨는데 우리 땅에서 만든 산딸기와인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0월29일, 산딸기와인 ‘산애딸기와인’ 공장을 직접 방문했다.
누구는 그런 말을 했다. 아침에 그 사람의 위를 뒤집어서 지난 밤 먹은 것들을 펼쳐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먹을거리는 한 사람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나그네 여행길에 든든한 지원자 역할
‘바보 노무현’이 좋아했던 산딸기와인을 찾아 지난 6월 중순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 갔다. 하늘은 폭풍우가 몰려올 것처럼 어두웠다. 흙빛 하늘색과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가슴 속을 헤집었다. 구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기사는 “거기는 깡촌인데, 구포시에서도 많이 들어가는 곳입니다”고 말한다.
40여분 달려 도착한 매리. 개 한 마리도 어슬렁거리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작물들 사이로 아담한 집이 보이고, 그 집 2층 베란다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산딸기닷컴’(www.sanddalgi.com). 오전 일을 마친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 “어디서 오신기요, 먼 곳까지 오셨네.”
산딸기는 쌍떡잎식물로 장미목 장미과에 속한다. 산딸기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힘겹게 산을 넘어갈 때 나그네 배 속을 채워주는 끼니였고,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농촌에서 아이들이 가장 사랑한 주전부리였다.
‘산애딸기와인’을 개발한 농부는 최석용(47)씨와 허정화(47)씨 부부다. 두 사람모두 이곳이 고향이다. 외지에 나갔다가 최씨가 26살이 되던 해 상동면에 설립된 한 개발회사에 입사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내 허씨는 도시에서 에어로빅강사였다.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사랑을 나눴다. “아내가 몸이 허약해서 다시 도시로 못나갔어요.” 최씨는 농부인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보면서 “언제가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1999년 그는 농부가 되었다.
동네주민 한현우(60)씨가 산에서 채취한 산딸기나무를 마을 주민들에게 분양하면서 이 동네는 산딸기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야생 산딸기와 농장에서 기른 산딸기가 합쳐진 종이었습니다. 더 크고 맛있었지요” 이른바 ‘대포천산딸기’의 탄생설화다. 마을에 흐르는 강의 이름을 붙였다.
소 똥 등 자연농법 재배…백두산 배달도 끄떡없는 진공포장법
최씨가 기르는 산딸기는 농약을 치지 않는다. 유기농으로 기른다. “처음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아이들은 커가고 포기할까도 생각했지요.”
그는 생선을 잡아 그 돈으로 버텼다. 낙동강 어장권이 있던 최씨는 배를 사서 물고기를 잡아 생선을 팔고 한방 엑기스를 만들었다. 어부의 길은 평탄했다. 입소문도 돌아 생선주문도 쇄도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사람을 살리는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는 독특한 비법으로 산딸기나무를 재배한다. 친환경식물을 먹고 자란 소의 똥을 유기농퇴비로 쓰고, 물고기를 잡아 그 안에 십전대보탕을 넣고 발효시켜 나무에 뿌렸다. 그는 참 열심히 공부하는 농부다. 환원순환농법(자연에서 나온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리는 농법)이나 자운영농법(콩과식물인 자운영을 심어 땅에 질소성분을 높이는 법) 등을 꾸준히 연구해서 활용했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그의 산딸기는 참 맛있다. 모양은 동글동글하고 두께는 도톰하다. 입 안에서 씹을 때마다 톡톡 즙이 터져 온 정신을 맛으로 점령한다.

그는 산딸기 진공포장법도 개발했다. 특허를 받아 놓은 상태다. 백두산으로 배달해도 걱정이 없다. 지금 바로 따서 먹는 것처럼 신선하다. 그가 만든 아이스산딸기는 여름철 최고다. “5년 전인가 경매소에서 산딸기를 매입하면서 이상한 방법으로 가격을 후려치더라구요. 거절했죠. 산딸기는 쌓여가고 옹기공장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옹기에 산딸기를 넣어 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산딸기는 술이 되었다. 맛을 보고 반해버린 그는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산딸기 판 돈을 모두 와인제조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다시 어려워졌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2008년에 드디어 ‘빈티지 2008’을 단 와인을 출시했다. 완성 전까지 그가 버린 산딸기가 수천 톤이다.
그는 와인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을 따랐다. 산딸기를 따서 열매를 으깨고 발효를 시킨 후에 압착을 했다. 압착해서 나온 과즙을 스테인리스 탱크에 넣고 숙성을 시켰다. 고가의 와인시설이 필요했다. “아내가 때로 볼멘소리를 했지만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알코올 도수 12%…외국산 와인 맛과 비슷

‘산딸기와인’을 햇빛에 비춰보면 붉은 자주색을 띤다. 아로마(와인을 잔에 부었을 때 첫 향)는 산에서 나는 풀냄새다. 탄닌은 적고 신맛과 쓴맛이 강하다. 알코올 도수는 12%인데 쓴맛이 강한 이유는 산딸기 자체의 묘한 맛이 들어가서이다. 일반적으로 쓴맛이 강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다. “와인애호가가 외국산 9~10년 된 와인의 맛과 거의 같다”고 말했단다. 한 잔 마시자 후끈 달아오른다. 우리나라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마니’는 마시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포도주가 생각난다. 단맛과 과일향이 강하다. 하지만 ‘산애딸기와인’은 샤토 라루트(프랑스 그랑크뤼급 고급와인)만큼은 아니지만 외국산 와인과 맛이 비슷하다.
‘산애딸기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하다. 착한 농부가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해서 땀 흘려 만든 와인이다. “처음 오신다고 연락이 왔을 때 놀랐지요. 좋았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한다. 첫인상은 마치 존경하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10년이 지난 뒤 뵌듯했단다. 편하고 친근하면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는 느낌이었단다. “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전날 비서관님이 연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동네주민들이 잘 가는 추어탕집을 잡았지요”라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친환경농법에 관심을 보였단다. “산딸기나무 심은 곳을 가셔서 직접 흙을 만져보시고 와인공장도 둘러보셨지요. 12시쯤 오셔서 4시가 다 되어 가셨습니다”고 말한다. 언뜻언뜻 그의 눈에 물기가 스며든다. “갑자기 비서관님께 방명록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곤 방명록에 ‘존경합니다. 큰 성공 바랍니다. 2008. 10. 29 노무현’이라고 적으셨습니다.”
또 다른 도전 ‘산딸기와인식초’

“서거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랬던지 며칠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인 두병을 들고 조문했습니다. 아침에서 가서 밤 늦게서야 영정 앞에 와인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다. “인생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는 느낌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존경할 수 있는 분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최씨가 말을 잇지 못한다.
해는 뉘엿뉘엿 붉게 물드는데, 눈동자 사이로 번지는 물기 때문에 더 이상 붉지 않았다. 농부 최씨는 요즘 ‘산애초’라는 산딸기와인식초를 개발 중이다. 이것도 도전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