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음식거리
우정보단 ‘식탐’…나를 이끌던 그맛이 나주맛
손끝에서 다져지는 홍어-비빔밥-곰탕 ‘아~’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맛이다. 그 맛에는 그 땅을 이고 지고 산 사람들의 마음과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박혀 있다. 한 입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혀 사이로 모시적삼에 물감 배듯이 달달한 맛이 느껴질 때마다, 씹는 동안 아삭아삭 소리가 날 때마다 행복감이 밀려든다.
‘삭은 홍어’ 고려 때부터 ‘삭았네’
어린 시절 매일 출근도장 찍던 친구의 집이 있었다. 그 집에 매일 가는 이유는 우정보다 배속의 거지 욕망 때문이었다. 그저 맛있는 것으로 혀의 욕심을 채우고 배속을 두둑하게 하려는 사악한 속셈이었다. 왜 하필 그 친구 집이냐고? 그 친구의 어머니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였다. 친구 어머니의 손끝에서 나오는 그 맛이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나주는 맛난 음식이 많은 곳이다. 보물섬 같은 곡식창고인 나주평야도 있다. 신발끈 동여매고 나주로 여행을 시작하면 처음 홍어거리를 만난다. 예전에 영산포구였던 곳이 지금은 홍어거리가 되었다. 고려시대 공도정책 때문에 흑산도의 일부 섬 사람들이 이곳 나주로 이주를 했다. 흑산도 사람들은 배에 여러 가지 생선을 담아 길을 나섰는데 5~7일 만에 나주에 도착했다. “뭐야 이거시, 섞여 버렸당가.” “거시기, 요것은 다르당가.” 다른 생선들은 모두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홍어만은 먹고도 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홍어가 삭은’것이다. 이런 유래 때문에 나주는 홍어를 숙성시키는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산식품>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홍어가공회사도 이곳에 있다. 도매상만도 30개 이상, 홍어만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은 약 5곳. 이 음식점에 가면 기절초풍할 맛이 “어서옵쇼”한다. 홍어애국. “먹어보지 못했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다.
홍어애국은 홍어내장을 넣어 끓인 탕인데 홍어 간이 주재료가 된다. 한 술 뜨자마자 코가 찡하다. 나를 버리고 떠난 놈의 매정함으로 얼굴을 방부처리하는 것 같다. 홍어애국은 처음 만나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평생 가는 친구처럼 깊이가 있다. 홍어애는 보리새싹과 궁합이 잘 맞는다.
홍어는 암컷이 맛있다. 가격도 수컷보다 비싸다. 그래서 일부 어부들은 수컷의 생식기를 잘라서 암컷처럼 속여 팔았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란 속담이 여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홍어1번지’(061-332-7444)

고춧가루·생고기 넣은 나주비빔밥 “뭔 맛이당가”
구진포 장어거리도 가볼 만하다. 장어는 본래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서 잡은 것이 맛나다. 구진포는 바닷물과 영산강물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이 장어거리로 유명해진 이유다. 지금은 대부분 기른 것을 재료로 쓰지만 ‘뭐 어떠랴’ 그 맛은 살아있다.
나주는 생선만 맛난 곳이 아니다. 이곳 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또 다르다. 전주비빔밥의 흰밥과 나물 대신 고춧가루와 생고기가 맘껏 그릇 안에서 활보한다. 나주비빔밥은 밥에 고춧가루와 고기기름을 넣어 비비고 그 위에 채소와 생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잊혀져 가지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시지 마시라! 사라져가는 ‘첫사랑’을 다시 불러온 이들이 있다. 오는 10월 중순 나주 선내동에 ‘향토음식연구소’이 부설 음식점을 열어 선보일 예정이다. 곰탕집 ‘남평식당’ 주인 김양님(84) 할머니한테 전화로 예약을 하면 맛볼 수 있다.

나주는 곰탕으로도 유명하다. 나주 곰탕집들은 늘 북적인다. 하지만 나주 곰탕의 역사는 애잔하고 슬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나주에 쇠고기 통조림과 단무지를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맛있기로 소문난 영산강변 무로 단무지를 만들었다. 쇠고기통조림과 단무지는 전쟁터와 일본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윤기향 나주시청 학예사는 말한다. 쇠고기통조림을 만들고 남은 신선한 쇠고기와 뼈, 피 등이 생겼고 그것들은 지금 나주곰탕의 재료가 되었다.
지금 나주곰탕집들이 몰려있는 곳은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자리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물건을 팔러 온 상인들에게 국밥을 팔았는데 이것이 나주곰탕이다. 나주곰탕은 설렁탕처럼 사골을 넣어 오랫동안 푹 끓이는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잡뼈와 생선 머리뼈를 넣어 우리고 건져낸 후 다시 고기를 넣어 끓인다. 그래서 국물 색이 뽀얗지 않고 맑다. ‘남평식당’(061-333-4665), ‘하얀집’(061-333-4292).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
우정보단 ‘식탐’…나를 이끌던 그맛이 나주맛
손끝에서 다져지는 홍어-비빔밥-곰탕 ‘아~’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맛이다. 그 맛에는 그 땅을 이고 지고 산 사람들의 마음과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박혀 있다. 한 입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혀 사이로 모시적삼에 물감 배듯이 달달한 맛이 느껴질 때마다, 씹는 동안 아삭아삭 소리가 날 때마다 행복감이 밀려든다.
‘삭은 홍어’ 고려 때부터 ‘삭았네’

나주는 맛난 음식이 많은 곳이다. 보물섬 같은 곡식창고인 나주평야도 있다. 신발끈 동여매고 나주로 여행을 시작하면 처음 홍어거리를 만난다. 예전에 영산포구였던 곳이 지금은 홍어거리가 되었다. 고려시대 공도정책 때문에 흑산도의 일부 섬 사람들이 이곳 나주로 이주를 했다. 흑산도 사람들은 배에 여러 가지 생선을 담아 길을 나섰는데 5~7일 만에 나주에 도착했다. “뭐야 이거시, 섞여 버렸당가.” “거시기, 요것은 다르당가.” 다른 생선들은 모두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홍어만은 먹고도 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홍어가 삭은’것이다. 이런 유래 때문에 나주는 홍어를 숙성시키는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산식품>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홍어가공회사도 이곳에 있다. 도매상만도 30개 이상, 홍어만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은 약 5곳. 이 음식점에 가면 기절초풍할 맛이 “어서옵쇼”한다. 홍어애국. “먹어보지 못했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다.
홍어애국은 홍어내장을 넣어 끓인 탕인데 홍어 간이 주재료가 된다. 한 술 뜨자마자 코가 찡하다. 나를 버리고 떠난 놈의 매정함으로 얼굴을 방부처리하는 것 같다. 홍어애국은 처음 만나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평생 가는 친구처럼 깊이가 있다. 홍어애는 보리새싹과 궁합이 잘 맞는다.
홍어는 암컷이 맛있다. 가격도 수컷보다 비싸다. 그래서 일부 어부들은 수컷의 생식기를 잘라서 암컷처럼 속여 팔았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란 속담이 여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홍어1번지’(061-332-7444)

고춧가루·생고기 넣은 나주비빔밥 “뭔 맛이당가”
구진포 장어거리도 가볼 만하다. 장어는 본래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서 잡은 것이 맛나다. 구진포는 바닷물과 영산강물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이 장어거리로 유명해진 이유다. 지금은 대부분 기른 것을 재료로 쓰지만 ‘뭐 어떠랴’ 그 맛은 살아있다.
나주는 생선만 맛난 곳이 아니다. 이곳 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또 다르다. 전주비빔밥의 흰밥과 나물 대신 고춧가루와 생고기가 맘껏 그릇 안에서 활보한다. 나주비빔밥은 밥에 고춧가루와 고기기름을 넣어 비비고 그 위에 채소와 생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잊혀져 가지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시지 마시라! 사라져가는 ‘첫사랑’을 다시 불러온 이들이 있다. 오는 10월 중순 나주 선내동에 ‘향토음식연구소’이 부설 음식점을 열어 선보일 예정이다. 곰탕집 ‘남평식당’ 주인 김양님(84) 할머니한테 전화로 예약을 하면 맛볼 수 있다.

나주는 곰탕으로도 유명하다. 나주 곰탕집들은 늘 북적인다. 하지만 나주 곰탕의 역사는 애잔하고 슬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나주에 쇠고기 통조림과 단무지를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맛있기로 소문난 영산강변 무로 단무지를 만들었다. 쇠고기통조림과 단무지는 전쟁터와 일본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윤기향 나주시청 학예사는 말한다. 쇠고기통조림을 만들고 남은 신선한 쇠고기와 뼈, 피 등이 생겼고 그것들은 지금 나주곰탕의 재료가 되었다.
지금 나주곰탕집들이 몰려있는 곳은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자리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물건을 팔러 온 상인들에게 국밥을 팔았는데 이것이 나주곰탕이다. 나주곰탕은 설렁탕처럼 사골을 넣어 오랫동안 푹 끓이는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잡뼈와 생선 머리뼈를 넣어 우리고 건져낸 후 다시 고기를 넣어 끓인다. 그래서 국물 색이 뽀얗지 않고 맑다. ‘남평식당’(061-333-4665), ‘하얀집’(061-333-4292).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