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탱탱 얼음 아삭 눈송이꽃이 피었습니다

박미향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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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갈아 먹는 시원한 괴력 빙수의 모든 것 전격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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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팥빙수

 

 

“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정말 좋아/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와따야/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거리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박자에 맞춰 흥얼흥얼거리다 보면 팥빙수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진다. 윤종신 목소리다. 윤종신은 가수다, 아니다? 윤종신은 엠시다, 아니다? 윤종신의 정체는 가수였던 것이다. 그것도 계절감각 뛰어난. 여름음식의 강자, 팥빙수를 노래의 재료로 삼았다.


팥빙수는 아이도, 어른도 모두 사랑하는 여름철 대표 간식이다. 아이는 팥의 달짝지근한 맛에, 사각사각 과자처럼 부서지는 재미에 팥빙수 집으로 달려간다. 아버지는 오래전 한때를 불러내는 팥빙수의 강력한 힘에 끌려 그 맛을 찾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몰랐기 때문에,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아서 그때의 팥빙수가 더 그립다.


곽현일 팀장(42·부산아쿠아리움)은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팥빙수 골목을 종종 찾는다. 그에게 팥빙수는 떫고 바르르 손 떨리는 사랑이다. 골목에는 8개가 넘는 팥빙수 리어카가 있다. 파란색 기계식 빙삭기와 할머니들이 직접 삶은 팥이 손님을 기다린다. 국제시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맛이 한결같다. 후한 인심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30~40년 전 국제시장은 부산에서 ‘좀 세련됐다’는 소리를 듣는 이들의 주무대였다. 26년 전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이 팥빙수 리어카에서 생애 첫 미팅을 했다. 팥빙수 리어카에 달린 번호가 미팅 번호표였다. 곽씨에게 아삭아삭한 얼음조각과 탱탱하고 달디단 팥은 그때의 수줍은 자신이다.


곽씨에게 추억의 음식인
팥빙수는 지금도 인기가 여전하다. 부산 팥빙수 골목처럼 전통을 지켜내는 곳도 많다. 맛은 조금씩 다르다. 팥과 얼음의 미세한 차이 때문이다. <esc>가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길라잡이로 나섰다. 팥을 요리하는 재주는 서커스 단원이 아찔한 공중곡예를 도는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음식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법. 팥빙수는 색다른 친구들을 끌어들여 맛과 모양을 바꾸기도 했다. 녹차빙수, 과일빙수, 배빙수, 초콜릿빙수 등. 형형색색, 울긋불긋한 재미를 준다. 팥빙수 디엔에이(DNA)가 박힌 한국인들은 남극에서도 팥빙수를 만들어 먹는다. 지구에서 유일한 맛이다. 팥빙수에는 여전히 숱한 사람들의 사랑과 추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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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의 베리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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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카티 카페 서울'의 녹차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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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빈'의 밀크팥빙수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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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맑은 토종 팥 귀한 만큼 제맛 하네
‘며느리도 모르는’ 달콤시원한 팥빙수의 속살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태양은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터미네이터처럼 우리를 향해 돌진해온다. 발을 찬물에 담가도 소용이 없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가동시켜도 그때뿐이다. 땀으로 흥건한 몸을 식혀주지 못한다.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시원한 얼음조각과 달달한 팥, 떡 조각이 배시시 웃는 빙수 한 그릇이면 모공까지 메워버린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빙수 중에 최고봉은 역시 팥빙수다. 인간의 역사가 호모사피엔스에서 시작한다면 녹차빙수, 와인빙수, 커피빙수 같은 별난 맛들은 팥빙수에서 출발했다. 정작 친한 친구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것처럼 제대로 된 팥빙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는 어렵다. <esc>가 그 속살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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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국산 중에서도 토종이 대장

팥은 팥빙수의 α(알파)이자 Ω(오메가)다. 좋은 팥을 고르는 일은 최고의 맛을 뽐내는 팥빙수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팥은 굵기가 일정하고 색이 선명한 것, 흔히 팥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흰 부분이 맑고 분명한 것이 좋다. 팥의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다. 더운 나라일수록 팥의 크기가 크다. 팥이라고 해서 다 같은 팥이 아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팥은 토종 팥과 토종 팥을 개량한 국산 팥, 중국산이 있다. 토종 팥은 4.5~5.5㎜ 크기인 개량 국산 팥보다 조금 작다. 국내 유통되는 대부분의 팥은 개량종이다. 강원도와 경기도 일부 지역, 충주, 보은과 무안, 영천, 안동, 문경 등지에서 재배된다.

팥빙수집은 주로 어떤 팥을 사용할까? 국내산 팥을 사용하는 빙수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산 팥이 비싸기 때문이다. 중국산 팥 가격의 약 2.5배다. 왜일까? 농수산물유통공사 집계를 보면, 연간 국내 팥의 수요는 3만톤이다. 국내 팥 생산량은 6000톤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2만2000톤 정도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팥은 대량생산하지 않는다.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량은 적은데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어서 심는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재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산 팥이 어느덧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하지만 맛은 국산 팥의 승리다. 중국산 팥은 지나친 화장이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이처럼 단맛이 부자연스럽게 강하다. 국산 팥은 숭늉처럼 구수하고 은은한 단맛이 깊고 진하다. 껍질도 중국산이 더 두껍다. 삶았을 때도 차이가 있다. 중국산 팥은 얇은 풍선처럼 껍질이 빨리 터진다.

 

팥 삶는 법→시간 속에 마법 있다

팥을 팥답게 하는 것은 바로 삶는 과정이다. 우리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략 2단계다. 처음 팥을 넣고 끓인 물은 버리고 다시 삶는다. 불순물과 팥 특유의 비릿한 맛을 없애는 것이다. 두번째 끓일 때가 중요하다. 26년 경력을 자랑하는 ‘레드빈’(신세계백화점 경기점 소재)의 주인장은 설탕을 넣는 시점과 불을 끄는 시점을 정확히 안다. “감입니다. 10년을 배워도 쉽지 않아요.” 설탕을 너무 일찍 넣으면 팥알은 단단해지고 부드러운 맛을 내지 못한다. 푹 삶아진 팥이 재료가 된다. 레드빈은 4~6시간 동안 끓인다.

팥 요리가 발달한 일본은 3단계다. 츠지원 요리아카데미에서는 일본식으로 팥을 삶는다. 팥을 찬물에 넣어 표면에 주름이 생길 때까지 삶는다. 주름이 생기면 찬물을 조금씩 더 부어가며 주름이 펴질 때까지 삶는다. 주름이 펴지면 물을 버리고 다시 차가운 물을 부어 팥이 으깨질 때까지 삶는다.

‘합’(종로구 인사동 소재)의 신용일 셰프는 삶을 때 헹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첫물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삶는다. 팥이 어느 정도 익으면 5번 이상 헹궈낸다. 충분히 헹궈내면 다시 물을 붓고 푹 퍼질 때까지 삶는다.

 

얼음→뻑뻑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게

얼음은 팥빙수의 뒤태다. 얼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돌아선 이의 뒷모습이 흉하다면 다시는 그를 찾지 않게 되는 법.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얼음의 사각사각한 결이 살아있어야 한다. 팥빙수의 재료로 쓰이는 얼음은 사각이나 둥근 모양의 작은 각얼음(3㎝)과 15㎝ 이상 되는 판얼음(통얼음)이 있다. 소문난 팥빙수집은 판얼음을 많이 사용한다. 얼음은 꽝꽝 언 것이 좋다. 질 좋은 얼음은 작은 기포도 없다. 기포가 많으면 완성된 얼음의 상태가 좋지 않다. 얼음의 탄력도 중요하다. 밀가루 반죽도 아닌데, 미용에 목숨 건 우리 누이도 아닌데 무슨 탄력? 숟가락을 넣었을 때 너무 뻑뻑해도, 너무 부드러워도 안 된다. 얼음 자체에서 솟아나는 적당한 힘이 숟가락에 전해지는 정도의 탄력이 있어야 한다. 얼음을 가는 시점도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 레드빈에서는 얼음을 깨끗이 닦고 살짝 이슬이 맺히는 정도로 녹인 다음 기계에 넣는다.

 

빙삭기→기계 따라 가격 7배차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이성이라면 빙삭기는 팥빙수의 이성이다. 정확한 구조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결과물을 만든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끌면서 빙수를 사달라고 조른 기억이 있다. 어쩌다 한번 오는 빙수 아저씨의 리어카에는 아버지의 수염만큼 웅장해 보이는 파란색 빙수기계가 있었다. 이제 추억 속의 그 기계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소량 주문제작하는 곳이 있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찾기란 쉽지 않다.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산간벽지 등에 팔린다고 한다. 판얼음을 넣어 갈았던 그 기계는 30~40년을 써도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서울 황학동을 샅샅이 뒤지면 한두 대 만나는 행운을 거머쥘까! 네잎클로버를 따는 것보다 쉽지 않다.

지금 팥빙수집들이 사용하는 빙삭기를 알아보자. 빙삭기는 국산과 일본산이 있다. 일본산은 각얼음을 사용하는 것과 판얼음을 사용한 것으로 나뉜다. 국산은 국산 칼날을 사용하는 것과 일제 칼날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뉜다. 외관은 비슷해 보이지만 가격차는 크다. 국산 칼날을 사용하는 국산 빙삭기는 30만원대, 일제 칼을 사용하는 국산 빙삭기는 50만원대이다. 일본산 빙삭기는 가격이 몇배 비싸다. 각얼음을 쓰는 것은 170만원대, 판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200만원대이다. 일본 ㅎ사의 200만원대 빙삭기는 70년대 추억담에 등장하는 빙삭기와 가장 비슷한 구조다. 50만원대 빙삭기는 패스트푸드점 ㄹ사가 사용하고 170만원대 빙삭기는 수입 도넛 프랜차이즈인 ㅋ사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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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빙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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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빙삭기처럼 판얼을 사용하는 빙삭기

 

 

떡→주연보다 빛나면 안돼~

떡은 팥빙수의 명품 조연이다. 쫄깃한 찹쌀떡이 가장 인기다. 떡의 크기는 주연이 짓눌리지 않는 정도면 된다. 너무 크면 팥과 얼음의 맛에 집중할 수 없다. 요즘은 떡 대신 졸인 대추편, 감자떡 등을 사용하는 집도 있다. 떡은 가난하던 시절 배를 두둑하게 채우라고 올렸다고 한다.

 

연유와 우유→비율이 핵심

연유와 소량의 우유는 팥빙수의 화룡점정. 이 두 가지 재료 때문에 밀크팥빙수라고도 부른다. 연유는 우유 성분을 1/2~1/3 정도로 농축한 것. 국내 우유업체인 ㅅ사의 연유를 많이 사용하지만 직접 만드는 집도 있다. 연유와 우유는 다른 팥빙수 재료들과의 비율이 중요하다. 간 얼음에 뿌리기도 하고 아예 얼음을 얼릴 때 함께 넣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은 전자다. 완성되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한 번에 비벼서 먹지 말고 위에서부터 조금씩 비벼 먹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법.

   


취재 뒷이야기

빙수의 역사와 요즘 뜨는 빙수집들, 남극의 빙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취재를 마치고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간단해보이는 요리도 그 안에는 수십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맛을 만드는 일은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재료 하나가 마지막 차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마음속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 어떤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 등, 사는 데는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마사 스튜어트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이 한 줄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원하는 일을 한다. 그것도 가볍게" 그가 말한 "가볍게"는 '아무렇게 한다'가 아니라 '즐겁게 한다' 일겁니다. 즐거운 일은 언제나 천사의 날개처럼 가볍기마련이니깐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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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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