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삶는 손맛에 과일·견과류로 한 점 포인트

박미향 2011.06.30
조회수 19222 추천수 0
    

새로 뜨는 빙수집들…구수·푸근하고 새콤·상쾌한 맛 도전!

 

 확장과 맛의 유지.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에게 두가지 요소는 두 마리 토끼와 같다. 1985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밀탑’은 최근 몇 년 사이 2개 지점을 더 열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킨텍스점이다. 밀탑의 인기는 여전하다. 30분 이상 기다려야 달콤한 팥빙수가 내 것이 된다. 하지만 미식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예전 같지 않다”라는 소리도 들린다. 밀탑에 버금가는 구수한 맛을 내는 팥빙수집들과 비명을 지를 만큼 색다른 맛과 형식을 차용한 빙수집들이 속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레드빈→계약재배 팥의 푸근한 맛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7층. 단아한 목소리의 주인 배인숙씨가 손님을 맞는다. 배씨는 26년간 팥빙수를 만든 어머니한테 비법을 전수받았다. 지금도 맛은 어머니가 감독한다. 2007년 문을 연 레드빈은 찹쌀떡 2개가 올라간 밀크팥빙수가 인기다. 계약재배한 토종 팥과 전남 강진·경남 함안에서 생산되는 팥을 사용한다. 어머니의 팥 삶는 실력은 고수 중에 고수다. 4~6시간 끓여 내는데 설탕을 넣는 시점과 불을 끄는 시점을 정확히 안다. 판얼음은 살짝 이슬이 생길 정도로 녹인 다음 간다. 얼음이 곱고 부드럽다. 빙삭기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30년 된 것이다. 팥과 얼음, 연유, 우유의 배합이 적절하다. 엉성하게만 보이는 팥빙수를 한입 머금는 순간 깜짝 놀란다. 팥의 알갱이는 형태가 살아있고 매끈한 질감은 비단 천이다. 톡 터지는 순간 구수하고 깊은 단맛이 우러난다. 알갱이 사이를 흐르는 팥물도 구수한 풍미가 가득하다. 얼음은 입안에서 자기들끼리 탱탱하게 뭉치다가 이내 부드러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외할머니의 구수하고 푸근한 맛이다. 배씨 어머니가 말하는 비결. “좋은 재료는 거짓말을 안 한다. 참맛을 낸다.” (6500원/031-69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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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잘게 부순 유자와 카스텔라 가루가 특징
 이것은 고봉밥인가? 팥빙수인가? 팥빙수는 사기를 두르고 넉넉한 몸매를 자랑한다. 곁에 다소곳이 앉은 놋숟가락은 정겹다. 합의 주인, 신용일 셰프는 ‘밥빙수’라고 부른다. 그는 프랑스 에콜 르노트르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하고 국내 한식레스토랑 ‘품’, 배용준이 일본에서 연 ‘고시레’ 등에서 일했다. 한국형 디저트에 관심이 많은 그는 같은 건물 2층에서 떡집 ‘합’도 운영한다. 지난 6월1일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합은 셰프의 고집과 창작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는 이미 10년 전 고전적인 기계식 빙삭기를 샀다. “언젠가는 내가 하겠다 생각했죠.” 팥은 경기 평야에서 재배하는 국산이고 얼음은 판얼음이다. 그는 팥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끓이고 여러 번 헹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팥을 삶는다. 눈꽃송이처럼 곱고 부드러운 얼음 사이로 향긋한 유자향이 난다. 잘게 부순 유자는 이 집만의 특징. “우유의 비린 맛을 없애줍니다.” 고명도 특이하다. 감자를 구워 으깨고 찹쌀과 섞어 삶아낸 것. 그 위에 카스텔라 빵가루를 뿌렸다. ‘밥빙수’는 정성스럽게 수놓은 우리 한복처럼 당당하고 곱다. 그는 자신의 팥빙수를 두고 ‘인사동 팥빙수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인사동의 명물이 되길 소망한다. (6000원/070-7532-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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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빈→고집스레 직접 만든 연유
 ‘엄지빈’은 방배동 서래마을에서 2009년 8월 반포동으로 이사했다. 서래마을 프랑인들이 아쉬워했다고. 이곳을 운영하는 세자매 중 둘째인 한현주씨는 과거 무쇠솥을 꺼내 길에서 팥을 삶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은 재미있어했다. 그는 고향 화순에서 가져온 팥을 정성스럽게 삶는다. 7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연유도 직접 만든다. 2005년 백두대간을 종주한 한 사장의 고집이 배어 있다. 팥의 구수한 맛과 은은한 단맛이 잘 살아있다. 얇게 올라간 대추는 팥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들머리에는 일본어가 빼곡히 적힌 잡지 한 장이 붙어 있다. 일본 기자가 취재한 엄지빈 기사다. 일본기자는 한달 동안 취재 허락을 받기 위해 매일 이곳을 찾았다. 검소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이곳 팥빙수는 느리지만 인생을 건강하게 살려는 심지가 느껴진다. (6000원/010-8677-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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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베리의 유희
 이곳의 베리빙수는 우유와 연유를 함께 얼린 얼음에 온갖 종류의 베리가 올라간다. 라즈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레드커런트(색이 붉은 까치밥나무 열매), 딸기 등. 새콤하고 달콤한 베리들이 온갖 맛의 유희를 펼친다.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왈츠가 시작되기만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한 궁정 같다. 톡, 툭, 투우욱, 터지는 베리와 다크 초콜릿, 피스타치오 가루, 민트는 즐거운 식감을 제공한다. 스테파노 디 살보 이탈리아 셰프와 한식 셰프들의 합작품이다. (2인분 2만4000원/02-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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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재→많이 먹어도 속 안 찬 건강빙수
 신토불이. 역시 우리 몸에는 우리 음식이 가장 잘 맞는 것일까. 서울 대학로에 있는 떡카페 다미재의 배빙수는 많이 먹어도 속이 차지 않다. 건강빙수다. 찬 성질의 배와 뜨거운 성질의 후추, 생강, 계피 등을 섞어 끓인 배숙을 얼려 만들었다. 숟가락이 빙삭기를 대신한다. 주인 장향진씨는 팥이 빠진 이유를 “걸쭉한 팥이 들어가면 배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명으로 백년초떡, 단호박떡, 흑미떡과 딸기 앙금편이 올라간다. 앙금편의 질감은 젤리와 양갱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향긋한 배꽃 향을 맡으며 지리산자락 계곡에 발 담근 나그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청량하고 시원하다. 건강요리연구가 장향진씨와 차 칼럼니스트 조성희씨 부부, 전공을 바꿔 2년 가까이 떡을 공부한 아들 조용준씨가 꾸려가고 있다. (1만원/02-744-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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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카티 카페 서울→녹차빙수 원조의 부활
 2000년대 초 녹차빙수로 이름을 날렸던 카페 ‘에땅끌레르’가 문을 닫고 서울 삼성동에 2010년 새로운 이름으로 연 집이다. 녹차빙수는 여전하다. 보성녹차를 뿌린 얼음과 그 위에 산처럼 올라간 녹차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산뜻한 맛을 제공한다. 아이스크림은 말차(가루녹차)와 우유를 섞어 직접 만든다. 녹차 잎을 따라 들리는 휘파람 소리처럼 상쾌하다. 속에 들어간 견과류와 팥은 중요하지 않다. 2000년 사장 배용진씨가 일본 여행길에서 맛본 녹차빙수에 반해 직접 개발했다. 두카티 카페 서울은 이탈리아에 본사가 있다. 1층은 카페, 2층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3층은 의류와 각종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다소 비싼 편. (1만6500원/02-547-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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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차 박물관→팥과 어우러진 견과류
 가던 세월이 인사동 한옥 지붕 아래 멈췄다. 바둑을 두며 세월을 낚는 이들이 보인다. 식탁마다 녹차빙수가 말없이 앉아 있다. 녹차빙수는 잔디인형을 뒤집어 쓴 것처럼 거칠어 보인다. 숟가락에 의지해 동굴탐험하듯 파들어 가면 아몬드, 피칸, 호두, 캐슈너트 등과 팥을 만난다. 제발 데려가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린다. 주인공은 단연 견과류다. 원재료를 직접 구워 매우 고소하다. 얼음은 일본산 말차를 넣어 얼린 것. 질 좋은 말차라지만 가격은 다소 비싸다. (1만6000원/02-735-6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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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밖에 초콜릿빙수를 선보이는 홍대 ‘카카오봄’과 강남구 신사동 케이크 전문점 ‘C four’, 동부이촌동의 명물 ‘동빙고’,판얼음과 직접 삶은 팥, 졸인 베리와 산딸기를 쓰는 압구정동 ’르 알래스카’도 빙수여행지로 가볼 만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취재 뒷이야기

집집마다 다른 차이는 신세계를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평범한 손님으로 먼저 찾아갔습니다. 맛을 봤습니다. 서비스나 인테리어도 눈여겨봤습니다. 취재는 나중에 진행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블러거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ㄷ은 강하게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몇 번 취재에 응했는데 결과도 좋지 않고, 마음에도 안 들고...."등등 무조건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쉬웠지요. 맛에 관해 몇 가지 꼭 여쭤보고 싶은 점이 있었으니깐요. 하지만 뭐, 대수겠습니까. 폭염과 굵은 빗줄기가 오고가는 이 여름, '가볍게 가볍게' 팥빙수 세계에 뛰어들어보세요. 더 멋진 곳을 발견하시면 꼭 연락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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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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