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빙수재료가 지천이다, 오버!

박미향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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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유빙 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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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지 주변 해안에서 밀려온 많은 유빙들을 눈 동그랗게 뜨고 살핀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얼음을 골라 가져온다. 2. 가져온 유빙을 적당한 크기로 조각내 깨끗이 씻는다. 왜? 바닷물이나 흙, 먼지가 묻어 있을 수 있으므로. 3. 준비된 얼음을 빙삭기에 갈아 보슬보슬 얼음가루를 낸다. 4. 기호에 맞게 팥과 통조림 과일(생과일이면 물론 더 좋고), 떡, 미숫가루, 여러가지 시럽과 연유, 우유를 얼음가루에 올리거나 뿌려 달콤함과 부드러운 맛을 가미한다. 5. 완성된 빙수를 먹으면서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남극의 빙하 맛을 음미하며 즐긴다.

 

자, 이 레시피를 찬찬히 뜯어보자. 눈에 밟히는 단어들이 있다. ‘유빙’, ‘남극’ 등. 희한하다. 유빙이 식재료다. 유빙은 흘러다니는 얼음덩어리다. 이 덩어리로 만드는 빙수 레시피다. 상상할 수 없다. 공상가인 노다메(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라면 모를까! 이 레시피는 남위 62°13’, 서경 58°47’에서 날아왔다. 서울로부터 1만7240㎞ 떨어진 곳이다. 남극 세종기지다. 그곳에서 펭귄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남극 세종기지 김동환(36) 조리대원은 기지에 들어온 지 6개월째다. “모든 것이 신기했는데 특히 빙수는 특별했어요.” 24년 전 기지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먹었던 빙수는 이제 이곳의 명물이다. 남극의 찬 얼음이 가장 중요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해안으로 불면 대원들은 잽싸게 밖으로 나간다. 빙수재료인 유빙을 구하기 위해서다. 바람이 바다로 방향을 바꾸면 유빙은 사라진다. 맛난 간식의 재료가 없어지는 것이다. 대원들은 에스키모들이 정성스럽게 식량을 보관하듯 큰 덩어리의 유빙을 해안 둔덕에 보관한다. 얼음 창고인 셈이다. 여름(한국의 11~2월)에는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넉넉한 양이 필요하다. 한 번에 80여명이 체류하기도 한다. 연구 목적으로 잠시 오는 이들, 정부 관계자들이나 조사단 등이다. “매우 재미있다고 합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는 거지요.” 남극의 빙하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특별한 체험이다. 유빙만 빙수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에 바다가 얼면 폭풍처럼 쓸고 가는 눈”도 재료다.
 그럼 팥이나 과일은? 통조림이다. 지난 12월 대원들이 기지에 들어올 때 발주한 품목에는 3㎏짜리 통조림 팥이 12통 적혀 있었다. 기지에서 1년 동안 먹을 팥이다. 통조림 팥이 떨어지면 김 대원이 직접 팥을 삶기도 하지만 그럴 일은 많지 않다. 12통은 대대로 내려오는 ‘적당하고 충분한 양’이었다. 과일은 운 좋으면 가까운 칠레에서 오기도 한다. 그런 날은 ‘팥빙수 특별판’이 만들어진다. 제24차 월동대 18명이 모두 모여 호호하하 우정을 나누면서 먹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내친김에 얼음 빙수그릇을 만든다. 기지 밖에 3~4시간만 두면 그릇은 저절로 완성.
 팥빙수 재료로서 유빙은 상급일까? 눈이 눌려 생긴 얼음이기 때문에 기포가 있지만 투명할 만큼 깨끗하고 불순물이 없다고 김 대원이 전했다. 요리사의 관점이다. “생수 얼린 것과 비슷하고, 상큼한 맛입니다.” 그는 양식요리가 전공이다. 대원들의 2주 식단이 실기시험이었다. 그는 술도 담그고 두부도 만들고 콩나물도 기른다. 명절 때는 떡도 빚었다. 여러가지 요리를 하지만 빙수는 특별히 애정이 간다. “눈이 내리고 몇천년, 몇만년 동안 천천히 다져져 만들어진 남극의 빙하는 마치 남극의 역사를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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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최경호 남극 세종기지 통신대원

 

*취재 뒷이야기

며칠 전 밤, 12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과 남극은 약 12시간 시간차이가 납니다. 김동환 남극 세종기지 조리대원과 통화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밤 11시경 1차 통화를 했습니다. "지금 점심시간입니다. 밥을 짓고 있어요. 1시간 30분 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대원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성품을 그대로 닮습니다. 아마도 김대원의 요리는 따스하고 정감 가는 음식일겁니다. 드디어 통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미 서면 답변을 받은 상태였지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남극에서 들려오는 소리, 휘릭, 차지만 온기 가득한 목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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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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