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현대 뒤섞인 그곳, 맛의 천국

박미향 201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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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혀의 즐거움 즐비한 대만 타이베이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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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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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젊은이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는 서울과 닮은 구석이 많다. 높은 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 맹렬하게 올라가는가 하면, 그 아래 낮고 낮은 땅에는 흙빛으로 도배한 집들이 사람들을 애처롭게 보듬어 안고 있다. 옅은 우울이 도시의 첫인상처럼 느껴질 때쯤 스쿠터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힘찬 표정을 만난다. 소박하고 검소하다. 서울과 비슷하다. ‘나’를 꼭 닮은 이를 만났을 때 느끼는 작은 불편함과 친근감이 공존하는 도시다. 여행의 긴장을 무장해제시키는 편안함도 타이베이만의 큰 매력이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40여분을 달리면 타이베이 중샤오둥로(忠孝東路)가 나타난다. 신흥개발지역인 신이구(信義區)에 위치한 이 거리는 20년 전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지금은 대만의 최고급 유행을 이끌 만큼 화려하다. 고급 백화점, 패션 빌딩들이 즐비하고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꼽혔던 ‘타이베이 101’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국제적인 호텔체인인 더블유(W)호텔은 지난 2월 ‘더블유 타이베이’(W Taipei)를 이곳에 열었다. 더블유호텔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에 ‘자연’이라는 열쇳말을 올려놓았다. 지난 5월19일 낮, 1층에 첫발을 내딛자 재생 목조로 만든 벽이 눈에 들어온다. 벽에는 반짝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ELD)로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빛을 발산할 때마다 세련된 예술품으로 변한다. 레스토랑 ‘키친 테이블’의 테라스에는 부드러운 선을 자랑하는 의자가 있고, 칵테일 바 ‘우바’에는 불규칙한 배열로 늘어선 크고 작은 보랏빛 찻잔이 모던함을 더한다. 광둥식 레스토랑 ‘옌’에는 미술품으로 변신한 중국 조리 기구들이 돋보인다. 수백개의 수저들은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해석을 거쳐 기하학적 모양으로 도열하고 있다. 중국적인 문화코드와 도시적인 세련미를 합친 디자인들이다. 고급호텔의 세련된 디자인 여행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타이베이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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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타이베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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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1914 크리에이티브 파크


  
엠아르티(Mass Rapid Transit·타이베이 지하철) 룽산쓰역에서 3분 거리에 룽산사(龍山寺)가 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번잡한 시내에 자리잡은 이 절은 도시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다. 평일 낮에도 소원을 빌기 위해 찾은 이들이 많다. 이 절에는 관음보살, 문수보살 등을 모시는 법당도 있지만 사해용왕이나 장사의 신 등을 모시는 사당도 있다. 민간신앙도 한자리 차지한 셈이다. 곳곳에 빨간색 작은 나무 조각이 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 조각 두개를 떨어뜨린다. 두 조각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계시다. 결혼을 꿈꾸는 처자들은 끈질기게 나무 조각을 떨어뜨린다. 뜨거운 태양도 주변의 소란스러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숭고하기까지 하다. 룽산사는 1738년에 세워졌지만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57년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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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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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시장

 

 

룽산쓰역에서 네 정거장(중샤오신성역)을 더 가면 ‘화산 1914 크리에이티브 파크’(華山 1914 創意文化園區)를 만날 수 있다. 화산 1914는 한국의 인천아트플랫폼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930~40년대 지어진 건축물을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 공연장으로 활용한 예술 공간이다. 황량한 느낌의 건축물은 예술을 만나 생동감 넘치는 창작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산 1914도 1914년에 세운 공장건물을 개조한 문화공간이다. 과거 이곳은 대만에서 유명한 와인공장이었다. 달짝지근한 와인향은 사라지고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예술적 기운이 넘친다. 주말에는 예술가들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최근 타이베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던한 예술공간이다. 예술적인 감흥에 흠뻑 취한 이들은 내친김에 타이베이필름하우스도 가볼 만하다. 대표적인 대만 영화를 꼽으라면 역시 <비정성시>다. 타이베이필름하우스는 <비정성시>의 감독 허우샤오셴이 미국 영사관 건물을 재단장해서 만든 문화공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세계가 펼쳐진 도쿄 지브리미술관만큼 다채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 대만인을 닮은 소박한 풍경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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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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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타이베이 호텔의 옌 레스토랑 디저트

 

 

세계 10대 식당 딘타이펑, 샤오룽바오 육즙 일품
  
 

대만은 맛의 천국이기도 하다. 모든 중화요리가 모여 있다. 중국 대륙에서 전해진 요리와 대만 향토음식, 야시장을 중심으로 퍼진 간편한 음식까지 다채롭다. 그중에서 따스한 육즙이 만두피 안에 풍성하게 담겨 있는 샤오룽바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타이베이 신이루에는 샤오룽바오 전문점인 딘타이펑의 본점이 있다. 1958년 노점으로 시작해서 1974년 지금의 자리에 가게를 열었다. 1993년 <뉴욕 타임즈>에 ‘가보고 싶은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등 전세계에 5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30분. 딘타이펑 본점. 줄이 길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여러 나라 언어가 뒤섞여 있다. 1층 한쪽에는 샤오룽바오를 빚고 있는 20여명의 요리사들이 보인다. 철저한 분업이다. 피를 동그랗게 잘라내는 이는 정확하게 무게를 잰다. 5.3g. 만두피의 무게는 4.8~5.3g을 넘지 않도록 정해져 있다고 조이후 본점 매니저가 말했다. 평일 1000~2000명, 주말이면 3000명이 찾는 딘타이펑 본점은 하루 만개의 샤오룽바오를 판다. 조이후 매니저는 식재료를 공급하는 공장이 3시간 거리에 있어 늘 신선한 재료를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창업자 양빙위(楊秉彛)의 아들인 사장 양지화(楊紀華)는 하루 2번씩 여러 매장을 돌면서 맛을 평가한다. 샤오룽바오는 역시 육즙이 일품이다. 조이후 매니저는 맛의 비결을 살짝 알려준다. 콜라겐이 많은 돼지껍질을 갈아서 육즙을 낼 때 함께 넣어 끓여낸다고 한다. 샤오룽바오는 맛있게 먹는 법이 따로 있다. 샤오룽바오를 초간장에 살짝 찍고 난 다음 숟가락에 얹는다. 젓가락으로 만두피를 살짝 찍어 육즙이 흘러나오면 생강채를 얹어 먹는다. 한 입 무는 순간 눈에서 레이저빔이 발사될 만큼 맛나다. 몇 년 전에는 프랑스인 고객들을 위해 쑹루샤오룽바오를 개발했다. 송로버섯 조각이 샤오룽바오 안에 들어 있어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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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타이펑의 쑹루샤오룽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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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타이펑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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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룽바오

 

 

맛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인상 좋은 장자후이씨가 다가온다. 20대의 앳된 직원이다. 한국어가 능숙하다. “몇 년 전 (배우) 이준기씨가 왔어요. 저에게 한국어를 배우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의 사진첩에는 배용준, 양미경 등 한국의 유명배우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다.
 타이베이의 밤은 느리다. 그래서 길다. 야시장은 긴 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야시장에는 돼지 귀, 찹쌀말이찜, 빙수, 대만식 파전 등 싸고 별난 음식들이 가득하다. 처음 맡은 향들은 야시장을 걷는 동안 친숙해진다. 스린야시장, 린장제야시장 등 색깔도 천차만별인 야시장들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타이베이=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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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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