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어 시금털털해진 사랑, ‘늦바람’ 나다

박미향 2009.09.16
조회수 28876 추천수 0
<식객>의 김치찜
세월의 맛 자글자글 끓이면 옛정이 보글보글
막 갈 즈음, 기막힌 ‘김치찜 사랑’으로 뒤집기

 
 
박미향-김치찜-1 copy 3.jpg2003년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2004년일지도 모른다. 동네 만화가게를 뒤졌다. 이집 저집 돌면서 가게 주인아줌마에게 애걸했다. “4권인데, 꼭 봐야 하는데.” 아줌마의 답은 “글쎄, 그게 별로 찾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찾았던 만화는 <식객>이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 <식객>은 4권까지 나왔었다. 어디선가 입소문을 들었다. 매우 재미있는 만화책이 나왔다고…, 허영만 선생이 쓴…. 그는 사람들이 시간을 홀딱 까먹게 만드는 만화책 여러 권을 낸 이였다.
 
시간을 홀딱 까먹게 만드는 마술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겨우 구한 4권의 만화책 <식객>을 붙잡고 밤새 읽었다. 우라사와 나오키 작품, <마스터 키튼>이나 <몬스터>을 기대했던 나는 생소한 이야기구조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먹을거리에 대한 묘사들이 낯설었다. 조금은 지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6년 뒤 그 <식객>은 모두 24권이 출간되었고,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생소한 이야기들은 드라마와 영화가 되어 종이 속의 인물들을 세상에 끌어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2009년 다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만화가게 아줌마를 조르지 않았다. 서점에 나주평야처럼 쭉 펼쳐진 책들을 한 권 한 권 사서 공부하듯이 줄을 쳐가면서 읽어나갔다. ‘아, 우리 음식에 이런 점이 있구나.’ ‘이곳은 꼭 찾아가서 먹어야겠는데?’
 
음식을 다룬 일본 만화는 많다. <미스터 초밥왕>, <맛의 달인>, <신의 물방울>, <심부인의 요리사>, <천하일미 돈부리>, <아빠는 요리사> 등등 셀 수도 없다. 그저 웃고 즐기면서 한 장 한 장 넘기기에는 그 내용이 어떤 요리서적보다 충실하다. 그 책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왜 없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더랬다. 그 허전한 마음을 <식객>이 채워주고 있다. 우리 삶과 아주 친근한 그림과 이야기가 큰 감동을 준다.
 
우리가 일본 만화를 보듯이 일본인들도 <식객>을 본다. 2009년 3월, 1권~5권이 일본‘고단샤’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다. 2만부 이상이 팔렸다. 일본에 불고 있는 한류의 영향도 있었지만 <식객>의 충실한 우리음식 이야기가 더 큰 역할을 했다.
 
<아빠는 요리사>나 <맛의 달인>은 이미 100권이 넘었다. 1권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은 만화책을 보는 이들과 함께 늙어갔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우리 <식객>도 시간을 버텨내서 언제가 100권이 나오길 고대한다.
 
용도 폐기 직전 화려한 변신, 부부의 정이란 이런 것!
 
식객24 copy.jpg최근 서점가를 점령한 <식객>은 24권이다. 주인공 성찬이는 여전히 ‘성찬식품’을 끌고 다니면서 맛난 식재료를 팔고 있다. 24권 김치찜편은 성찬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고 심드렁해진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한 치과의사 이야기이다. 야간근무까지 하는 그는 그저 돈을 버는 기계 같다. 하루하루 일상에 지치고 버거운 삶의 요구들 때문에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 그의 탈출을 돕는 것은 요트여행에 대한 꿈이다. 십 수 년 함께 산 아내는 자신의 생활에 바쁘다. 심지어 지쳐 쓰려져 있는 남편을 ‘버리고’ 홀로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가거나 유럽여행을 준비한다.
 
이쯤 되면 막간다는 생각이 든다. 티브이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로 결말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부인은 떠나고, 유학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삶의 허망함에 치를 떠는 중년의 한국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결론은 ‘김치찜’이었다. 오랜 시간 묵혀야만 제 맛을 내는 묵은 김치처럼 아내는 그에 곁에서 ‘김치찜 사랑’을 펼쳐 보인다. 부부의 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시큼해서 이제 식탁에서 용도 폐기되는 음식 같지만 몇 시간만 보글보글 끓이면 시간이 가져다준 색다른 맛이 붉은 배추 잎 사이에 오롯이 녹아 있어 이것 만한 음식은 없어 보인다.
 
허영만이 <식객>의 성찬 관상을 보면 뭐라 말할까?
 
책에서 허영만은 김치찜의 맛의 비결은 김치에 있다고 말한다. 맛이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장기저온숙성 방법이 중요하단다. 6~8개월은 걸린다. 쭉쭉 찢어먹는 맛이 유쾌하다. 마치 얇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뜯어내는 쾌감이 느껴진다. 홍어만큼은 아니지만 세월이 선물하는 시큼한 향은 고급와인의 어떤 부케보다 우아하다. 이 김치가 기름이 자르르한 돼지고기와 만나서 천생연분 궁합을 맞추는 순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 탄생한다.
 
요리사 김정은씨는 상대적으로 담백한 김치찜을 좋아하는 이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목살을 쓰지만 기름기 넉넉한 김치찜을 원할 때는 삼겹살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한다. 묵은 김치는 김치찜 말고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다. 잘 씻은 묵은 김치를 광어 한조각위에 얹으면 이것만한 요리도 없다. 여기에 샤리(초밥의 밥)가 만나면 혀가 춤을 춘다.
 
허영만은 74년에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로 데뷔했다. <각시탈>, <무당거미>등이 초기작품이다. 기억 속에 강렬한 이야기는 <오!한강>이다. 뒤늦게 그의 작품 <타짜>가 영화화되면서 그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다.
 
그를 한 족발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세월이 비켜간 얼굴이었다. 탄탄한 피부, 넉넉한 웃음과 여유 있는 이야기들, 나이가 들어 성장한 ‘성찬’을 보는 듯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내게 한 말이었다. “박 기자는 무서움이 별로 없지요?, 겁이 없지?”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킨 듯했다. 60층 넘는 빌딩 옥상 난간에서도 두발 단단히 딛고 사진을 찍은 나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아, 호랑이처럼 송곳니가 양쪽에 있는 사람들이 그래, 관상이” 하고 웃으셨다. 아, 그렇지. 그는 지금 관상만화 <꼴>을 연재하는 중이다. 쉰을 넘기고 그의 열정은 도착지를 모르는 열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식객> 25권이, 100권이 기대된다.
 
 
■ 김치찜
 
재료 ㅣ 묵은지 1/2포기, 돼지고기 목살 300g, 다진마늘 1큰술, 물 1컵
 
만드는 법
1. 돼지고기 목살은 반으로 잘라준다.
2. 냄비에 묵은지, 목살, 다진마늘, 물을 넣고 끓으면 약불에서 1시간 정도 익힌다.
3. 그릇에 묵은지와 고기를 썰어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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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
요리 김정은 요리사(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  <식객> 24권에 나오는 김치찜 요리법
 
1. 냉장고에서 5도로 6개월간 숙성한 포기김치를 준비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중간 정도로 익은 포기김치도 가능하다)
 
2. 돼지고기 앞다리 살을 넉넉히 준비한다. 앞다리 살은 기름기가 없고 질감이 부드러워 김치찜용으로 좋다. (목살도 좋으며 앞다리 살 이용 시 기름기가 적다고 느껴지면 기름 덩어리를 따로 넣는 것도 좋다.)
 
3. 솥에 앞다리 살을 먼저 넣고 포기김치를 위에 원형으로 덮는다. 이때 포기김치는 반 포기를 자른 후 다시 3등분을 하는데 삼등분한 김치는 손가락에 엇갈려 잡아 솥에 넣는다. (만약 3등분한 포기김치를 결대로 넣으면 푹 찌면서 달라붙을 염려가 있다.)
 
4. 앞다리 살과 김치 정리가 끝나면 참기름을 듬뿍 넣고 희석한 사골 육수를 넉넉히 채운다. (이때 희석한 비율은 물과 육수가 7:3 내지 8:2로 하면 된다. 100% 사골을 사용할 경우 오래 끓이고 졸이는 탓에 비린내가 날 염려가 있다. 육수 준비가 어렵다면 맹물로 해도 상관없다.)
 
5. 뚜껑을 덮고 강불로 40분간 끓인다.
 
6. 이후 30분간 중불로 끓이고 마지막으로 약불로 20분간 끊인다.
 
7. 김치찜 맛은 시간조절이 중요하므로 반드시 지킨다.
 
8. 완성된 김치찜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함께 덜어 먹는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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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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