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가 뱅뱅, ‘얼취녀’의 엽기적인 ‘술 진상’

박미향 2009.11.23
조회수 25398 추천수 0
   음주가무연구소
   ‘알코올 좀비’ 탐구생활, 어? 그거 내 이야기네!
   “뭐 어때” 일그러진 영혼을 위해 술 달리는거야

 
Untitled-5 copy.jpg11월이 되면 잠시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시련의 고통처럼 너무 아프다. 몇 해 전 11월 어느 밤이었다. 그날은 심장도 얼어붙을 만큼 추웠다. 술 몇 잔 누더기처럼 걸치고 집으로 향한 시각은 밤 11시. 버스에 올라탔는데 금세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내렸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추운 날, 술을 마시고 따끈한 온돌방 같은 택시를 타 본 이라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 상승작용이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불러올지! 마포대교를 지날 때였다. 버스에서 나를 강타한 구토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어이없게 마주친 눈빛 ‘그냥 웃지요’
 
술꾼인 나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택시 안에서는 절대로 구토를 하지 않는 것! 택시에서 내가 ‘만행’을 저지르고 나면 그 택시는 다른 손님을 태울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루 일감을 내가 무슨 권리로 빼앗는단 말인가! 하여 창문을 급하게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라! 찬바람이 씽씽! 시린 바람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위장 속의 오물들을 다시 창자 속으로 돌려보냈다. ‘휴’ 안도의 기쁨이 뇌 속에서 춤을 춘다. 다시 고개를 안으로 들여보내려하는데! 바로 그때, 그때였다. 그다지 든 것도 없어 크지도 않은 머리통이 택시 뒷좌석 차창에 꼭 끼여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톱니바퀴에 대패조각이 낀 것처럼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택시 안에서 머리 구출작전을 수행 중인 손은 슈퍼맨처럼 바쁘다. 택시기사님은 뭐가 그리 좋으신지 트로트를 귀청 떨어져라 듣고 계셨다. 택시기사님이 구원의 투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바로 그때, 그때였다. 택시는 마포대교 남단 신호등 앞에 섰고 그 옆에 나란히 커다란 버스도 섰다. 어쩔 수 없었다.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고귀한 버스 안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수밖에! 이 무슨 ‘거침없이 하이킥’(<문화방송>에서 2006~2007년 방송한 시트콤 드라마)이란 말인가! 그들은 영롱한 눈동자를 굴리면서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뒤덮고 내 고막을 찢었다. 다음에 어찌되었느냐고? 궁금하신 분 이메일로 문의하시라.
 
취하면 용감하다…‘무서운’ 아저씨한테 돌진
 
반절 잘린 맥주잔이 표지인 만화, <음주가무연구소>에는 11월 마포대교 위에 ‘내’가 이 장, 저 장에 널려 있다. “뇌가 둥둥 떠다니네요”, “기억해내는 것 자체가 두려워져서 다시 잠을 자기로 합시다. 그게 최고죠” 알코올에 자신을 한껏, 힘껏, 소신껏 맡겨본 적이 있는 이라면 이해 삼단뛰기를 하고도 남는다. 주인공 니노미야 토모코는 ‘만화가 겸 술주정뱅이자 음주가무연구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연구원들은 모리헤, 타나카 아츠코, 뽕, 베로니타 까르보나라다. 이들은 모두 소장과 밤새 술을 퍼마시는 사람들이다. 모리헤는 “소장님 혹시 술이란 게 엄청 위험한 음식이 아닐까요?”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진실을 이제야 의심이 된다는 듯이 진지하게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빠라람, 빰빰, 빠라라~.” 미친 만화다. 이들이 펼치는 술주정은 진상 중에 진상이다. 그런데 한 번 잡은 첫 장의 진상을 놓을 수가 없다. 다음 진상으로 슬금슬금 넘어가면서 어느새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일본에도 ‘알코올 좀비’들이 있다니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술집에서 취한 상태로 옆 테이블로 가서 무섭게 생긴 아저씨에게 담배 쥐는 방법을 질문하는 장면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리얼’하다. 왜? 애주가들이여, 곰곰이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시라! 술 마시다가 옆 식탁 손님과 죽마고우가 된 적이 없는지~.
 
작가 니노미야 토모코는 실제 소문난 애주가다. 이 만화도 심심풀이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만화는 달려갈수록 코가 찡끗해진다. 알코올 속에  따스한 휴머니즘이 있다. “왜 술집에는 좋은 사람이 많은 걸까요” 물론 취기가 주는 흰소리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고찰이 숨어 있다. 알코올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세상살이를 위해 입은 딱딱한 갑옷을 벗어던진 사람들은 아이처럼 순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작가는 “마음을 열고 모든 걸 내던지며 바보가 되는 시간이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우리들에게 전한다. 
 
내 에피소드 들으면 당장 스카웃하려들텐데­… 
 
Untitled-6 copy.jpg만화책을 넘기다보면 그녀를 따라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눈에 띈다. 얼큰 취한 그녀와 연구원 타나카 아츠코는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 공원을 찾는다. “이게 뭐야! 왜 이래!” “제길 다 죽이자!” 공원에서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라도 만난 것일까! 아니다. 외계인보다 더 무서운 족속들을 만났다. 공원 데이트족! 벤치 이곳저곳에서 바퀴벌레처럼 엉켜붙어 있는 모습을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다. 쪽쪽쪽! 두 사람은 폭탄을 투하한다. ‘파지지직’ 딱 붙은 바퀴벌레들 사이로 폭죽은 터지고 공원은 깨끗해진다. 집에 돌아와 하는 말 “쓸데없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의외로 즐겁네.” 정말 즐겁다. 이 즐거운 일은 작가가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하는 짓이다. 꼭꼭 그녀를 따라 남산공원 바퀴벌레들 청소에 나서보리라!
 
<음주가무연구소>는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로 유명한 니노미야 토모코가 십 여 년 전 완성한 만화다. 2003년 쇼덴샤가 그녀의 작품 <음주가무연구소>(1996)>와 <술 마시러 가자>(1999)>를 합본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것을 ‘애니북스’에서 번역 출판했다. 니노미야 토모코는 1989년 로 데뷔했고 2004년 <노다메 칸타빌레>로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했다. 올해 8월 일본에서 <노다메 칸타빌레>가 22권으로 완결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노다메’ 때문에 니노미야 토모코는 한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노다메’의 행동양태를 보면 술 취한 니노미야 토모코가 따로 없다. 음악과 술에 쩔어 있는 두 사람의 진상은 시작과 끝이 같다. 술을 부르는 이 계절, 그 진상이 한없이 그립다.
 
11월만 되면 떠오르는 내 진상을 니노미야 토모코가 안다면 아마도 <음주가무연구소>로 나를 스카웃하지 않을까! 그녀와 술 한잔 하고 싶다. 그녀가 가장 많이 외치는 소리, “뭐 어때”를 나도 목청껏 높여 알코올에 실어 지르리라.
 
<음주가무연구소> 한국지부장으로서 첫 번째 임무, 이 겨울 친구들과 맛나게 먹을 술 한 가지를 소개한다.
 

■ 샹그리아
 
 재 료
레드와인 600ml, 레몬 1/2개, 오렌지 1/2개, 꽃사과 3개, 시나몬스틱 1개, 설탕 적당량(3T 정도, 기호에 따라)
 
만드는 법
1. 꽃사과는 껍질째로 4등분해 씨를 파낸다.
2. 레몬과 오렌지는 껍질째 3~4mm 두께로 썬다.
3. 레몬, 오렌지, 꽃사과는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3~4분 정도 담갔다 헹군다.
4. 밀폐용기에 사과와 레몬, 오렌지, 시나몬스틱을 담고 레드와인과 설탕을 넣은 뒤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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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맛 담당 기자, 요리 김정은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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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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