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니즈 봉봉 클럽>
주인공 가슴팍에 ‘에로틱’ 왕만두, 너무 섬세해 ‘후끈’
중국음식 먹으러 다닐 인생 피곤한 ‘고딩’들 다 모여!
일러스트 화가이자 만화가인 조경규(36)씨를 만난 적이 있다. 몇년 전이었다. 연남동에 있는 중국집 ‘향미’에서였다. 신문에 실리는 그의 얼굴 사진을 찍어야 했다.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엉거주춤 들어오는 폼이 도무지 ‘잘 나가는 일러스트 화가’ ‘엣지 있는 만화가’로 보이지 않았다. 방긋 방긋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마다 그저 귀엽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찐빵처럼 생긴 작가, 그림은 ‘엣지’ 있네
그는 미국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인기 캐릭터 ‘팬더 댄스’를 만든 이이기도 하다. ‘팬더 댄스’는 한자책 등 현재 출간되고 있는 다양한 책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9년에는 미디어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작품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그 ‘업계’에서는 꽤나 유명세가 있는 작가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를 벽에 세웠다. 그리고 큰 만두 두 개를 들게 했다. 만두가 그의 통통한 볼에 붙으니 하나가 된 듯하다. 큰 흰 덩어리(얼굴) 안에 동글동글한 눈들과 만두가 만나 기상천외한 얼굴이 되었다. 그 위로 그의 까까머리가 새둥지처럼 덮여 있었다. ‘빵’ 터졌다. 내 심장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싫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애걸복걸로 위장한 나의 ‘강압’을 참아주었다. ‘잘 나가는 예술가’의 넉넉한 아량이 느껴졌다. 넉넉한 아량은 실력에서 나온다. 몇 달 후 그의 만화 작품 <차이니즈 봉봉 클럽>을 보고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작가’ 조경규의 작품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숨이 막힌다. 만화 속 인물들의 극적인 표정과 기상천외한 말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는 ‘에로틱’과 ‘천진난만’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한다. 그가 그린 왕만두는 ‘에로틱’의 상징이다. 주인공 ‘은영양’은 커다란 왕만두를 가슴팍에 들고 있다. 섬세하게 묘사한 왕만두를! 후끈 달아오른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컷 없이 “핫핫” 소리와 땀방울만 그려 넣은 다른 이들의 얼굴 컷도 묘한 상상을 자극한다. 가히 만화 <시마과장>의 ‘사랑놀이’와 비슷하다.
클럽 가입 요건 간단, 세가지만 해당하면 ‘통과’
조씨는 한참을 이렇게 성인용 만화를 그리듯 놀다가 금세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먹을거리 앞에서 무너지는 다섯살짜리 아이들과 같아진다. 주인공들의 표정에 홀딱 빠져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솔솔 배가 고파진다. 군침이 돈다.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중국음식 탐방기이다. 한 고등학교 식도락 클럽 <차이니즈 봉봉 클럽>의 회원들인, 은영양, 쇼타, 해리, 아롱이가 중국음식 맛 순례를 하면서 풀어내는 요리만화다. 주인공들은 은영양을 빼고는 모두 중국 만두를 닮았다. 통통, 퉁퉁, 푹푹, 폭폭 살점들이 춤추는 얼굴들이다. 이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한다. ‘중국요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 매일매일 인생이 고단하신 분,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안 오르시는 분’. 맛은 기억이고 추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현재를 지탱해주는 절대적인 힘이다. 주인공들이 현실을 이겨내는 무기는 중국음식이다.
왜 하필 중국음식일까? 조씨의 어린 시절 때문이다. 그는 화교학교가 있고, 화교가 만든 중국음식집들이 몰려있는 서울 연남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고향인 셈이다. 한동안 오랫동안 살았다. 꼬마 때부터 익숙한 먹을거리가 중국음식이었다. 그런 인연 때문에 조씨는 중국음식 마니아가 되었다.
그가 펼치는 중국음식의 세상은 생동감이 넘친다. 중국음식에 대한 설명도 꼼꼼하다. “오향은 산초, 팔각, 계피, 정향, 회향 다섯가지 향신료를 말하는데요, 그 향이 맛을 깔끔하게 해주기”때문이라고 주인의 입을 빌려 친절하게 알려준다.
넘길수록 ‘후끈’ 볼수록 ‘크큭’…마지막에 맛집 정보까지
다른 요리만화와 다르게 음식점 탐방이라는 소재가 눈길을 끈다. 책 마지막에 취재한 집들의 정보도 있다. 찾아가기 편하다. 맛집 순례를 만화 소재로 한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 만화책은 2008년 만화잡지 <팝툰>에 조씨가 연재한 만화를 모아서 한권의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책 앞쪽에 자화상이 있다. 닮았다. 머리 모양, 반짝반짝 빛나는 별(그와 조금만 이야기하다보면 빛이 보인다), 호기심 많은 표정이 똑 같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집은 연남동 ‘향미’다. 미식가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중국요리집이다. 화교가 운영한다. 향긋한 오향의 맛이 누런 벽마다 촘촘히 박혀 있는 집이다. 그는 이 집을 탐방하면서 자신의 진솔한 느낌도 빼놓지 않는다. “위에 얹은 고기랑 양념이 밥에 배어들고요, 까무잡잡한 삶은 달걀도 짭짤하니 맛있고, 야채볶음도 아삭아삭하니 맛이 살아있어요!” 다음 집 ‘오향만두’집으로 이어지는 순례는 중국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볼수록 ‘웃긴 만화’, 넘길수록 ‘뜨거워지는 만화’가 바로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다. 신나게 웃을 수만 있다면 인생에서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 작가의 엽기발랄, 포복절도하는 다음 만화도 기대해본다. 지금 그는 중국에서 본토 맛 순례를 하고 있다. (조경규씨와 만두를 붙여서 찍은 사진은 신문에 쓰지 않았다. 평생 그와 원수가 될 수는 없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주인공 가슴팍에 ‘에로틱’ 왕만두, 너무 섬세해 ‘후끈’
중국음식 먹으러 다닐 인생 피곤한 ‘고딩’들 다 모여!
일러스트 화가이자 만화가인 조경규(36)씨를 만난 적이 있다. 몇년 전이었다. 연남동에 있는 중국집 ‘향미’에서였다. 신문에 실리는 그의 얼굴 사진을 찍어야 했다.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엉거주춤 들어오는 폼이 도무지 ‘잘 나가는 일러스트 화가’ ‘엣지 있는 만화가’로 보이지 않았다. 방긋 방긋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마다 그저 귀엽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찐빵처럼 생긴 작가, 그림은 ‘엣지’ 있네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를 벽에 세웠다. 그리고 큰 만두 두 개를 들게 했다. 만두가 그의 통통한 볼에 붙으니 하나가 된 듯하다. 큰 흰 덩어리(얼굴) 안에 동글동글한 눈들과 만두가 만나 기상천외한 얼굴이 되었다. 그 위로 그의 까까머리가 새둥지처럼 덮여 있었다. ‘빵’ 터졌다. 내 심장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싫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애걸복걸로 위장한 나의 ‘강압’을 참아주었다. ‘잘 나가는 예술가’의 넉넉한 아량이 느껴졌다. 넉넉한 아량은 실력에서 나온다. 몇 달 후 그의 만화 작품 <차이니즈 봉봉 클럽>을 보고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작가’ 조경규의 작품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숨이 막힌다. 만화 속 인물들의 극적인 표정과 기상천외한 말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는 ‘에로틱’과 ‘천진난만’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한다. 그가 그린 왕만두는 ‘에로틱’의 상징이다. 주인공 ‘은영양’은 커다란 왕만두를 가슴팍에 들고 있다. 섬세하게 묘사한 왕만두를! 후끈 달아오른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컷 없이 “핫핫” 소리와 땀방울만 그려 넣은 다른 이들의 얼굴 컷도 묘한 상상을 자극한다. 가히 만화 <시마과장>의 ‘사랑놀이’와 비슷하다.
클럽 가입 요건 간단, 세가지만 해당하면 ‘통과’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중국음식 탐방기이다. 한 고등학교 식도락 클럽 <차이니즈 봉봉 클럽>의 회원들인, 은영양, 쇼타, 해리, 아롱이가 중국음식 맛 순례를 하면서 풀어내는 요리만화다. 주인공들은 은영양을 빼고는 모두 중국 만두를 닮았다. 통통, 퉁퉁, 푹푹, 폭폭 살점들이 춤추는 얼굴들이다. 이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한다. ‘중국요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 매일매일 인생이 고단하신 분,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안 오르시는 분’. 맛은 기억이고 추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현재를 지탱해주는 절대적인 힘이다. 주인공들이 현실을 이겨내는 무기는 중국음식이다.
왜 하필 중국음식일까? 조씨의 어린 시절 때문이다. 그는 화교학교가 있고, 화교가 만든 중국음식집들이 몰려있는 서울 연남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고향인 셈이다. 한동안 오랫동안 살았다. 꼬마 때부터 익숙한 먹을거리가 중국음식이었다. 그런 인연 때문에 조씨는 중국음식 마니아가 되었다.
그가 펼치는 중국음식의 세상은 생동감이 넘친다. 중국음식에 대한 설명도 꼼꼼하다. “오향은 산초, 팔각, 계피, 정향, 회향 다섯가지 향신료를 말하는데요, 그 향이 맛을 깔끔하게 해주기”때문이라고 주인의 입을 빌려 친절하게 알려준다.
넘길수록 ‘후끈’ 볼수록 ‘크큭’…마지막에 맛집 정보까지
다른 요리만화와 다르게 음식점 탐방이라는 소재가 눈길을 끈다. 책 마지막에 취재한 집들의 정보도 있다. 찾아가기 편하다. 맛집 순례를 만화 소재로 한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 만화책은 2008년 만화잡지 <팝툰>에 조씨가 연재한 만화를 모아서 한권의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책 앞쪽에 자화상이 있다. 닮았다. 머리 모양, 반짝반짝 빛나는 별(그와 조금만 이야기하다보면 빛이 보인다), 호기심 많은 표정이 똑 같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집은 연남동 ‘향미’다. 미식가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중국요리집이다. 화교가 운영한다. 향긋한 오향의 맛이 누런 벽마다 촘촘히 박혀 있는 집이다. 그는 이 집을 탐방하면서 자신의 진솔한 느낌도 빼놓지 않는다. “위에 얹은 고기랑 양념이 밥에 배어들고요, 까무잡잡한 삶은 달걀도 짭짤하니 맛있고, 야채볶음도 아삭아삭하니 맛이 살아있어요!” 다음 집 ‘오향만두’집으로 이어지는 순례는 중국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볼수록 ‘웃긴 만화’, 넘길수록 ‘뜨거워지는 만화’가 바로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다. 신나게 웃을 수만 있다면 인생에서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 작가의 엽기발랄, 포복절도하는 다음 만화도 기대해본다. 지금 그는 중국에서 본토 맛 순례를 하고 있다. (조경규씨와 만두를 붙여서 찍은 사진은 신문에 쓰지 않았다. 평생 그와 원수가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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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