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요리왕
회사선 ‘멍’ 때리다가도 밤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거기서 거기라고? ‘비굴한 싸움닭’ 맛, ‘4번 타자’ 맛…

한번은 미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한번은, 꼭 한번은 말이다. 그것도 아주 세게! 욕망에 확 인생을 맡겨버리는 거다. 내면의 욕망에 충실한 화가가 남긴 최고의 명화는 안 될지라도 무언가 남지 않을까! 그 결과물이 엄청나게 비싼 것일 수도 있고 차갑게 식어버린 ‘싸구려 커피’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평균수명 확 올라간 지금,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무엇’이 남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마음에 품을 것이 있는 인생, 나쁘지 않다.
다이유상사 영업1과에 다니는 후지모토 코헤이는 ‘라면’(라멘)에 엄청 ‘미친놈’이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기는 다반사다. 그야말로 빵점 직장인이다. 6시 ‘땡’치면 발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씽’ 없어진다. 동료들은 그 정확성에 질린다. 상사가 호되게 야단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수건 동여맨 이마를 들이밀고 포장마차에 나타난다. 이 포장마차는 그가 운영하는 ‘라면 포장마차.’ ‘초절정 라면 엘리트’로 변신한다. 그의 라면 포장마차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번쩍번쩍 옮겨 다니는 통에 ‘맛 좋다’라는 바람 같은 전설만이 떠돈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자기만의 맛’을 찾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의 라면가게를 열지 않을 생각이다. ‘미친 놈’의 고집이다. 라면에 미쳤기 때문에 라면을 폄하하는 인간과 싸우고, 옛맛을 잃어버린 단골집에 가서 그 맛을 찾아주고, 유명한 라면가게 주인과 맛 대결도 펼친다. 라면 앞에서 후지모토는 언제나 영롱한 표정이다. 사무실에서 ‘멍’ 때리고 있는 무뇌아의 표정이 아니다.
후지모토는 과연 ‘ 자기만의 라멘맛’ 찾았을까
후지모토 코헤이는 일본 만화 <라면요리왕>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25권까지 출간된 <라면요리왕>은 ‘쿠베 로쿠로’와 ‘가와이 탄’이 공동저자다. <미스터 초밥왕>처럼 좋아하는 음식에 미친(?) 주인공이 좌충우돌하고 자신만의 맛을 찾아 삼만리 달리는 이야기다.
2009년 격주간 일본 만화잡지 <빅 코믹 슈피리어>의 15호가 최종회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단행본 26권으로 완결되었다. 한국에서는 곧 26권과 완결판 27권이 나올 예정이다. 작가는 후속작으로 <라면재유기>를 현재 일본에서 연재하고 있다. <라면요리왕>에 등장한 여자주인공이 후속작을 이끌어간다. 마지막회에서 우리의 주인공 후지모토 코헤이는 드디어 자신의 라면가게를 열었다. ‘미친’ 보람이 있었다.
이 만화는 언젠가 나만의 ‘맛집’을 열고자 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책이다. 만화에는 라면요리법, 경영의 문제점, 새로운 메뉴 개발 등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부딪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간단한 요리인 라면을 두고 어쩌면 이리도 다양한 표현으로 우리를 꼬드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굴한 싸움닭’, ‘해질 무렵 하늘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 같은 맛’, ‘야구의 4번 타자만 있는 맛’ 등등….
일본 라면인 라멘은 최근 우리네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되었다. 서울 이태원이나 홍익대 유흥가(?)에 가면 심심치 않게 라멘집을 발견할 수 있다. 떠도는 소문도 쭉쭉 뻗은 가지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많다. ‘어느 집이 요즘은 대세라고’, ‘어느 집은 새로 개발된 라멘이 특이하데’ 등등….
라멘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음식이다. 중국인들이 자주 만들어 먹던 국수 라몐(拉麵:손으로 뽑은 면)이 유래다. 라멘을 ‘중화면’, ‘중화소바’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세계대전 때 중국으로 건너갔던 일본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고국에 돌아왔지만 라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일본 라멘의 시작이다.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라멘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라멘들로 진화했다.
느끼한 규슈라멘, 돼지뼈 우린 돈고츠라멘, 간장 맛 도교라멘
일본을 몇 달 돌면서 먹어도 끝나지 않을 여행이 라멘여행이다. 일단은 명성이 자자한 곳부터 맛보는 것이 좋다. 북쪽 삿포르는 라멘도시라고 할 만큼 라멘가게가 많다. 라멘골목도 있다. 겨울에는 3시만 돼도 어둑해지는 곳이 삿포르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처럼 딱딱한 눈을 조심조심 밟으면서 라멘골목을 찾아 나섰던 기억 있다. 후지모토처럼 라멘에 미쳐있을 때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로 건네준 라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삿포르라멘에 흠뻑 취하고 난후에는 남쪽 규슈라멘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름기가 많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하카타가 유명해서 ‘하카타라멘’이라고도 부른다. 돼지뼈를 진하게 우린 육수를 사용하는 ‘돈고츠라멘’이 이 지역 라멘이다.
일본 최고의 미식가들이 모인다는 도쿄의 라멘도 빼놓을 수 없다. 도쿄라멘은 간장 맛이 기본이다. 면이 다른 곳보다 가늘고 쫄깃하다. 기타가타라멘도 인기다. 담백한 맛이 매력이다. 맛의 고향, 오사카도 꼭 가볼만한 곳이다. 오사카라멘은 간사이지역 특유의 맛이 잘 나타나있다. 살짝 단맛이 특색이다.
죽도록 많이 먹다보면 ‘미치는 라멘’이 생긴다. 그 라멘을 흠뻑 기쁘게 사랑하는 일은 정말 세상 어떤 일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미칠 준비’를 마쳤다면 뜨거운 나만의 라멘 한 그릇 만들어 먹고 길을 나서면 좋지 않을까!
라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한번은 미칠 필요가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회사선 ‘멍’ 때리다가도 밤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거기서 거기라고? ‘비굴한 싸움닭’ 맛, ‘4번 타자’ 맛…

한번은 미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한번은, 꼭 한번은 말이다. 그것도 아주 세게! 욕망에 확 인생을 맡겨버리는 거다. 내면의 욕망에 충실한 화가가 남긴 최고의 명화는 안 될지라도 무언가 남지 않을까! 그 결과물이 엄청나게 비싼 것일 수도 있고 차갑게 식어버린 ‘싸구려 커피’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평균수명 확 올라간 지금,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무엇’이 남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마음에 품을 것이 있는 인생, 나쁘지 않다.
다이유상사 영업1과에 다니는 후지모토 코헤이는 ‘라면’(라멘)에 엄청 ‘미친놈’이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기는 다반사다. 그야말로 빵점 직장인이다. 6시 ‘땡’치면 발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씽’ 없어진다. 동료들은 그 정확성에 질린다. 상사가 호되게 야단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수건 동여맨 이마를 들이밀고 포장마차에 나타난다. 이 포장마차는 그가 운영하는 ‘라면 포장마차.’ ‘초절정 라면 엘리트’로 변신한다. 그의 라면 포장마차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번쩍번쩍 옮겨 다니는 통에 ‘맛 좋다’라는 바람 같은 전설만이 떠돈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자기만의 맛’을 찾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의 라면가게를 열지 않을 생각이다. ‘미친 놈’의 고집이다. 라면에 미쳤기 때문에 라면을 폄하하는 인간과 싸우고, 옛맛을 잃어버린 단골집에 가서 그 맛을 찾아주고, 유명한 라면가게 주인과 맛 대결도 펼친다. 라면 앞에서 후지모토는 언제나 영롱한 표정이다. 사무실에서 ‘멍’ 때리고 있는 무뇌아의 표정이 아니다.
후지모토는 과연 ‘ 자기만의 라멘맛’ 찾았을까

2009년 격주간 일본 만화잡지 <빅 코믹 슈피리어>의 15호가 최종회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단행본 26권으로 완결되었다. 한국에서는 곧 26권과 완결판 27권이 나올 예정이다. 작가는 후속작으로 <라면재유기>를 현재 일본에서 연재하고 있다. <라면요리왕>에 등장한 여자주인공이 후속작을 이끌어간다. 마지막회에서 우리의 주인공 후지모토 코헤이는 드디어 자신의 라면가게를 열었다. ‘미친’ 보람이 있었다.
이 만화는 언젠가 나만의 ‘맛집’을 열고자 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책이다. 만화에는 라면요리법, 경영의 문제점, 새로운 메뉴 개발 등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부딪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간단한 요리인 라면을 두고 어쩌면 이리도 다양한 표현으로 우리를 꼬드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굴한 싸움닭’, ‘해질 무렵 하늘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 같은 맛’, ‘야구의 4번 타자만 있는 맛’ 등등….
일본 라면인 라멘은 최근 우리네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되었다. 서울 이태원이나 홍익대 유흥가(?)에 가면 심심치 않게 라멘집을 발견할 수 있다. 떠도는 소문도 쭉쭉 뻗은 가지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많다. ‘어느 집이 요즘은 대세라고’, ‘어느 집은 새로 개발된 라멘이 특이하데’ 등등….
라멘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음식이다. 중국인들이 자주 만들어 먹던 국수 라몐(拉麵:손으로 뽑은 면)이 유래다. 라멘을 ‘중화면’, ‘중화소바’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세계대전 때 중국으로 건너갔던 일본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고국에 돌아왔지만 라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일본 라멘의 시작이다.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라멘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라멘들로 진화했다.
느끼한 규슈라멘, 돼지뼈 우린 돈고츠라멘, 간장 맛 도교라멘
일본을 몇 달 돌면서 먹어도 끝나지 않을 여행이 라멘여행이다. 일단은 명성이 자자한 곳부터 맛보는 것이 좋다. 북쪽 삿포르는 라멘도시라고 할 만큼 라멘가게가 많다. 라멘골목도 있다. 겨울에는 3시만 돼도 어둑해지는 곳이 삿포르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처럼 딱딱한 눈을 조심조심 밟으면서 라멘골목을 찾아 나섰던 기억 있다. 후지모토처럼 라멘에 미쳐있을 때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로 건네준 라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삿포르라멘에 흠뻑 취하고 난후에는 남쪽 규슈라멘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름기가 많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하카타가 유명해서 ‘하카타라멘’이라고도 부른다. 돼지뼈를 진하게 우린 육수를 사용하는 ‘돈고츠라멘’이 이 지역 라멘이다.
일본 최고의 미식가들이 모인다는 도쿄의 라멘도 빼놓을 수 없다. 도쿄라멘은 간장 맛이 기본이다. 면이 다른 곳보다 가늘고 쫄깃하다. 기타가타라멘도 인기다. 담백한 맛이 매력이다. 맛의 고향, 오사카도 꼭 가볼만한 곳이다. 오사카라멘은 간사이지역 특유의 맛이 잘 나타나있다. 살짝 단맛이 특색이다.
죽도록 많이 먹다보면 ‘미치는 라멘’이 생긴다. 그 라멘을 흠뻑 기쁘게 사랑하는 일은 정말 세상 어떤 일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미칠 준비’를 마쳤다면 뜨거운 나만의 라멘 한 그릇 만들어 먹고 길을 나서면 좋지 않을까!
라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한번은 미칠 필요가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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