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속엔 포근한 초콜릿이…

박미향 2011.03.17
조회수 7989 추천수 0

문영화·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하늘에서 내려온 '퐁당 쇼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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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우리 부부의 집은 여덟 가구가 사는 4층짜리 아파트였다. 뒤에 마당이 있고 그 끝자리에 남편의 작업실이 있는데 부엌과 통하는 발코니에서 “밥 먹어!” 소리치면 금세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 처음 이사 올 당시 마당엔 괭이밥이 가득했다. 파리에서 내 땅 한 뼘 갖기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한풀이하듯 나무를 심고 씨를 뿌려 작은 정원과 텃밭을 만들었다. 이곳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방치된 공간이 정원으로 바뀌어 좋아하는 프랑스 주민과 한국 푸성귀에 목말라 하는 유학생이 그들이었다. 날 좋은 주말이면 유학생 친구들은 고기와 와인을 들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고기 줄게. 깻잎 다오!” 이렇게 외치며 마당에 숯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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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다들 불고기 중독자들이다. 아무리 내가 준 레시피대로 만들어도 맛이 안 난다며 얻어먹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우리 마당에 숯불이 지펴지면 하던 부엌일도 멈추고 콧노래를 부른다. 그날은 희한하게도 3층에 사는 승무원 부부인 세실과 시몽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출타중이었다. 장거리 비행이 많고 부모님이 바로 옆집에 살기에 주말에는 거의 집을 비우기 일쑤인 부부였다. 그런 탓에 우리 집 불고기 바비큐 맛을 모르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들에게 잘 구워진 고기를 먼저 한 접시 가져다주고 한참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세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코니 밑으로 도시락 같은 것이 줄에 매달려 내려왔다. 그 모양이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세실은 말했다. 그들이 보낸 음식은 ‘퐁당 쇼콜라’. 하얀 수플레 컵 안에 담긴 까만 초콜릿케이크는 겉은 잘 익은 케이크지만 젓가락으로 속을 파면 초콜릿이 따뜻하게 녹아 있는 음식이다. 금방 오븐에서 나온 듯했다. 미리 구워 놓을 수 없기에 제과점에서는 팔지 않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후 디저트로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유학생들은 구경도 못하는 귀한 것이었다. 그날 퐁당 쇼콜라를 나눠 먹은 친구들은 이후 하늘을 보며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고기 줄게. 초코케이크 다오!”

 

 

퐁당 쇼콜라(1인당 55g씩 5인분)
재료: 버터 50g, 다크 초콜릿 100g, 달걀 1개, 달걀노른자 1개, 설탕 1TS, 제과용 리큐어 2TS(위스키나 럼 같은 것들), 분당(아주 고운 설탕가루) 1TS
만들기
 1. 오븐을 230도로 10분 정도 예열한다.
 2. 수플레 컵 혹은 적당한 사이즈의 용기 안에 버터를 소량 바른다.
 3. 초콜릿을 부숴 버터와 함께 중탕으로 녹인다.
 4. 믹싱볼에 달걀과 설탕을 넣어 부드러운 크림색이 될 때까지 저어준다.
 5. 3을 4에 조금씩 부어가며 잘 섞는다.
 6. 준비된 2에 5를 담아 오븐에 넣어 10분 정도 굽는다.
 7. 분당으로 장식한 다음 식기 전에 바로 먹는다.


팁.

1.과용 리큐어는 달걀의 비린내를 잡기 위한 것. 없으면 안 써도 괜찮다.

2.버터와 다크 초콜릿을 녹일 때 버터를 먼저 녹이는 것이 그릇에 덜 붙는다. 중탕을 하기가 번거로우면 전자레인지를 쓰면 편하다. 이때 온도가 높으면 끓는다. 낮은 온도가 적당하다.

3.너무 많은 양을 용기에 담아 구울 경우 속까지 따뜻해지지 않는다.

4.용기에 담은 채로 냉장고에 보관하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다.

 

 

글 문영화. 그림 김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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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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