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색 사랑의 맛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 부쩍 예민해진 탈에 나는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손 길을 잘 주질 못하는 식사시간을 보내곤했다. 어린시절부터 입이 짧아 웬 만큼 구미에 맞지 않으면 밥상에 앉지도 않았던 나였기에 엄마께서도 그러려니 넘기셨고, 그래서인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좀처럼 활기차게 지내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우울하던 때에, 어디서 듣고 왔는지 수험생에겐 제일 좋은 음식이라며 동생이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린 날, 아빠께서 급작스레 돌아가시게 되어 엄마께서는 홀로 가정을 이끌어가셔야 했기에 이리로저리로 생활전선에 뛰어드셨고, 자연스레 우리는 우리끼리 끼니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런 시절에 엄마께서 만들어 놓으신 밑반찬과 찌개나 국을 일주일 단위로 데워먹는 것에 물렸는지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게되었다. 입도 짧은데 간보는 것 조차 잘 못하는 서러운 미각을 가진 내 덕에, 수도 없는 죽음의 맛을 경험하고 나서야 떡볶이 하나를 완성하고, 김치볶음밥을 완성하곤 했던 우리였다. 그런 소소한 요리들로 채운 밥상들에 뿌듯함을 느끼게 된 나는 급기야 엄마께서 만들어주시곤 했던 카레에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 매운 맛, 약간 매운맛, 순한 맛...사올 때는 분명 다른 종류였는데 조리를 마치고 나면 항상 같은 맛, 짜고 묽은 맛이었다. 그럼에도 동생은 정말 맛있다며 싹싹 비워내고 탈이나곤 했었다.
그 시절, 고집센 언니가 꼭 맛있는 카레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때마다 옆에서 물도 같이 더 부어봐주고, 맛있다는 칭찬도 듬뿍넣어주던 그 동생이 이젠 나보다 훨씬 의젓한 모습으로 수험생 특식을 만들어주겠다며 장을 봐오고 도마를 꺼내 그 맵다는 양파를 썰어 볶는다. 엉성하게 썰어넣은 감자, 당근 싫어하는 언니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데도 다져넣은 당근, 고기보단 햄이 좋다는 언니에 칼집낸 소세지까지 잔뜩 부어넣은, 맞춤형 카레. 밥은 대충 깨작거리고 매점에 들려 해로운 튀김이나 집어먹어 때우던 그 아침의 위를 든든하게 데워준 동생의 카레. 학교에서 돌아와 식빵 몇 조각 토스트해먹고 말던 쓸쓸한 저녁식탁을 가득 채워준 듬직한 그 맛. 다 비워내고 가만히 앉아 노랗게 물든 밥그릇을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은 어린 시절 아빠 엄마께서 함께 일구셨던 우리 수목원의 앞뜰에 가득했던 야생화 애기똥풀. 길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피어있어 눈길한번 주지 못했던 그 앙증맞은 꽃잎을 아빠 손 잡고 뚫어져라 바라봤었던 추억속에서 비록 화단을 가꾸는 화려하고 진귀한 꽃은 아니지만, 소담스런 노란색을 뽐내던 그 꽃, 애기똥풀. 그 따뜻하고 포근한 색을 그대로 담아낸 동생의 카레덕분에 요 며칠은 왕성한 식욕을 찾고 건강까지 챙기는 든든한 수험생활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다. 무뚝뚝한 성격에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고단한 언니를 향한 동생의 사랑과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네가 만들어준 카레의 힘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게 무엇이 되든 꼭 멋진 모습 보여주는 언니게 될게. 고마워, 다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