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버지 고기
꼭 이맘때였다. 온 동네를 접수하며 뛰어놀다 구정물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들어선 마당 한 켠에서 피어오르던 냄새... ‘아버지 고기’ 냄새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쪼그려 앉아계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을 타고 피어오르던 비릿한 냄새는 이내 구수한 손길로 자식들의 허기진 속을 토닥여주었다.
누군가의 청춘처럼 활활 타오르다 백토가 된 채 꺼져가는 다 타버린 연탄 하나를 마주하고 계시던 아버지는 예술혼을 품은 장인과도 같았다. 전혀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려 뒤집어가며 빛깔만으로 맛의 완급을 조절하시던 진지한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아버지를 둘러싸고 앉아 숨죽이며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야만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 고기’라 부르던 그것이 생선 ‘양미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앵미리’, ‘야미리’라고도 불리는 어종으로 꼭 이맘때인 11월과 12월이 제철인 생선이다. 바다나 굵은 모래 속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동이 틀 무렵 먹이를 잡기 위해 수중으로 튀어오른다는 양미리는 뼈째 먹는 생선으로 구이나 무를 깐 조림 또는 강정으로 만들어 먹는다.
가을볕에 말려 허리가 반쯤 접힌 채 새끼줄에 줄줄이 매어놓은 이 녀석들을 아버지는 스러져가는 연탄불에 정성스레 구워주셨다. 너무 바삭하지도, 너무 눅눅하지도 않게 잘 구워진 양미리를 다섯 째 막내까지 받으면, 서로의 눈짓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고는 일제히 중간 허리를 반으로 뚝 자른다. 누구는 정확히 반으로, 누구는 머리쪽으로 또는 꼬리쪽으로 치우쳐 잘라졌지만, 이내 한바탕 웃고는 엄마표 맛간장에 푹 찍어 크게 한 입 베어먹는다. 입 안으로 퍼지는 고소함과 부드러움, 뼈째 먹는 생선임에도 어느 하나 걸리는 것이 없이 씹히는 식감의 환상적인 조화! 전혀 비린 맛이 없고 껍질의 바삭거림과 속살의 짜지 않은 담백함이 간장의 깊은 맛에 어우러진 최고의 먹거리였다. 가을무를 깔고 양념을 올린 조림이나 감칠맛이 강조된 강정도 먹어보았지만, 그 시절 구이만큼의 깊은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기억 속엔 다섯 자식 먹이느라 등 한 번 펴지 못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스러지는 연탄불을 마주하고 계셨을지, 어쩌면 우리가 삼켰던 건 어려운 시절 내 아버지의 땀과 노고는 아니었을지...
지금 아버지는 양미리를 기억하시지 못한다. 아니, 자식들에게 그렇게 구워주셨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시지 못한다. 너무 고단했던 것일까, 우리에겐 그렇게 달콤했던 기억을 아버지는 잊으셨다. 이제 그 날의 아버지에게 잘 구운 양미리를 대접하고 싶다. 스러지는 연탄불처럼 허허로운 인생을 정리하고 계신 나의 아버지에게 ‘아버지 고기’를 먹을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고, 그렇게 추억하게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그 시절의 우리처럼 세상에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양미리 구이’를 맛있게 드시고, 그 기억이 아버지의 남은 여정에 하길 기도한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과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양미리’라고 부르던 어종이 실은 ‘까나리’라고 한다. 어획량과 관련하여, 흔히 부르는 이름과 정식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라고 말이다. 그것이 ‘양미리’든 ‘까나리’든 그 맛있고 눈물나게 그리운 추억은 내게 영원히 ‘아버지 고기’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