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시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 결혼은 안 된데이!”
그럴 줄 알았다. 평소 ‘이제 니 나이면 초혼은커녕 재취 시장으로 넘어가야 된다’며 협박하던 어머니였지만, ‘전라도 출신’ 남자를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한 바. 집안 대대로 경상도에 뿌리를 두고 있던 보수파 어머니는, 평소에도 전라도 욕을 즐겨하는 터였다. 거기에 중산층이었던 우리집과 달리 서민층이었던 남자의 기우는 가세도 반대에 한몫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어머니의 우려대로 내 나이는 이제 재취시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결혼을 승낙했고, 양가 상견례를 잡기에 이르렀다.
남자의 부모님은 목포에 살았고, 나의 부모님은 대구에 살았다. 남자와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호텔 레스토랑을 잡아 상견례를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80살을 목전에 둔데다 최근 암수술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예비 시부모님께선 거듭 죄송함을 전하며 여행 삼아 목포에 와서 상견례를 해주십사 부탁하셨다.
태어나서 전라도 땅을 밟아본 적도 없고, 밟고 싶지도 않고, 밟을 일도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상견례까지 사돈 집 근처서 해야 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어쩔 건인가?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보톡스 맞은 메기마냥 입이 튀어나온 어머니를 모시고 목포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서 만난 시부모님이 우리를 안내한 식당은 놀랍게도 ‘또또분식’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어머니의 눈빛은 공황 상태가 됐으며 남자의 등골은 서늘해졌다. 시어머니는 순박한 시골 아낙의 얼굴로 “1년에 한 번도 외식을 안 해서 어디다 약속을 잡아야 할지 몰라서 주변에 물어보니 이 식당이 맛있다고 해서 잡았다”고 설명했다.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떡볶이, 순대 중에 골라야 하나? 다행히 오므라이스, 버섯덮밥, 김치볶음밥 등도 있었다. 주문을 한 뒤 시어머니는 친히 식당 주인에게 “아주 중요한 손님들이니깐 특별히 맛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식당 주인은 “특별한 손님이랑께 내가 농약도 안 뿌리고 재배한 것”이라며 꼬투리도 안 깐 완두콩을 커다란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내놨다. 완두콩을 맛있게 먹는 것으로 분위기를 전환해보려고 호들갑을 떨며 ‘맛있겠다’며 완두콩 꼬투리를 집어드는 순간, 지네인지 송충이인지 정체모를 벌레도 같이 딸려나왔다. 한두마리가 아니었다. ‘으악’ 소리도 지를 수 없는 상황. 지네와 송충이보다 더 무서운 건 이걸 보게 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각자 시킨 밥이 나왔다. 당연히 어머니는 수저도 들지 않았다. 대신 시부모님에겐 입 벙긋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과장되게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크신 목소리가 반공웅변대회 출전자마냥 식당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후식은커녕 그 흔한 커피 한잔도 없이 상견례 자리가 끝났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한 시부모님은 연신 “멀리 와주셔서 고맙다”며 우리를 배웅했다. 어머니는 자동차에 타자마자 “미친 거 아이가? 이거 결혼을 하자는 거가? 엎자는 거가?”라며 분노의 사자후를 토해냈다. 하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고 지금은 며느리에게 그 무엇 하나 바라는 것 없는 순박한 시부모님께 어머니도 대만족이시다.
그러나 아직도 시댁 근처 그 식당을 지나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하필 그때 벌레까지 나올 건 뭐야! 하지만, 식당 주인 말대로 그 완두콩은 농약 한번 치지 않은 진짜 유기농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