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괴팍한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돌아가신 지 이십여년이 됐어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무섭고 엄격하신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서울 할머니 댁으로 6학년때 부모님과 떨어져 유학을 갔다. 그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부모님 동생들과 떨어졌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지만 할머닌 내 친할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엄격하셨다. 그 땐 일부러 저러시나보다 했는데 나도 이제 사십 중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건 그 분의 타고난 심성이었지 싶다. 어린 자식들 데리고 육이오 전쟁 겪으면서 남하하신 곳이 철원이라 했다.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 그래서 둘째 아들인 우리 아버지를 밥이나 굶지 말라고 잠시 친척집에 보내기까지 하셨단다. 큰아들이 성공해서 서울에 번듯한 집을 장만해드려도 할머닌 김치조각하나 설거지통에 들어가는 꼴을 못 보셨다. 사촌 오빠 부부와 함께 살았는데 올케 언닌 훅 하면 할머니께 지청구를 들어야만 했다. 그 때 살던 집에는 반지하실이 있었는데 거긴 할머니의 보물 창고였다. 가끔 심부름으로 내려가면 퀴퀴한 냄새와 함께 나는 잘 알지도 못할 것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자를 가져오라는 말씀에 이것저것 들춰보다 썩은 감자가 가득 담겨있는 바구니를 보고는 그 냄새에 코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며칠 후 올케 언니가 쟁반 가득 연한 갈색의 손자국이 꾹꾹 나 있는 투박한 떡을 내왔다. 한창 입이 궁금할 나이의 나는, 맛있게 먹다가 할머니와 올케 언니의 대화를 듣고는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썩은 감자가 그 떡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썩어도 못 버리는 할머니의 지독함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썩은 감자가 이런 구수한 맛의 재료라니. 이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끔 휴게소나 강원도 여행할 때 감자떡을 사먹어도 그 맛이 아니다. 색도 그 때의 갈색이 아니고, 식감도 고무같이 질기기만 할 뿐, 구수한 맛도 없다. 이제 와 큰엄마나 엄마께 여쭤 봐도 만들 줄 모르신단다. 할머니가 해 주신 음식이 여러 가지였을 텐데도 아직도 감자떡만 보면 어김없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손녀딸이 감자떡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면 할머니가 혼내지나 않으실런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