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했던 그 겨울의 밥상
김장철이다. 저마다 김장했느냐는 안부다. 김치를 많이 안 먹는다고 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김장은 겨울 양식이고 김치냉장고 덕분에 사계절 양식이다.
나이 사십 중반이건만 아직도 친정어머니에게 김장을 의지하고 있다. 연세가 있으시니 힘들어 하시면서도 엄마도 해주고 싶어 하시고 나도 쉽게 ‘내가 할께’라고 말을 못하고 있다. 어쩌면 감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적 추억과 고향의 맛에 대한 미련일지도...
그 시절 엄마는 올망쫄망한 오남매와 어른들까지 식구가 많으니 요즘처럼 딱히 배추 몇 포기라고 헤아리지도 않고 밭에서 뽑아다 마당가득 절였다. 잠을 설치시며 새벽에 일어나 배추를 씻어 놓으시고 아침을 먹고 나면 이웃아주머니들까지 두어분 오셔서 그날은 종일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우리들은 마음만 바쁘고 들떠서 오며 가며 쭉쭉 찢은 배추 한 잎씩 얻어 먹으면 면 그 싱싱한 맛이라니! 아, 군침돈다. 그렇게 시작된 김장은 겨울 내내 밥도둑이다.
해가 짧은 겨울 어둠이 들면 우리들은 추위에 볼은 빠알갛고 손은 꽁꽁얼어 안방으로 뛰어든다. 형광등 불빛아래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으로 손발이 모여든다. 그즈음 엄마는 정지(부엌)과 안방사이의 작은 문을 열고 밥이며 반찬을 들여보내주신다.
꽁지만 베어낸 길다란 배추김치 한 그릇에 큰 양푼이에 가득푼 하얀밥 한 그릇으로 동생들과 둥그런 상에 모여 앉아 빠알간 김치 쭉쭉 찢어 꿀꺽꿀꺽. 그야말로 꿀맛.
겨울이 깊어 가고 동치미가 노릇하게 맛있게 익으면 큰 그릇에 길게 쭉쭉 찢은(손으로 찢어야 더 맛있다) 배추김치 한그릇, 길쭉 길쭉하게 썬 동치미 한 그릇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배추김치는 시퍼런잎이 더 깊은 맛이 있다. 시퍼런 배추잎에 밥을 싸서 먹으면 수북하던 밥이 금새 없어진다. 독에서 바로 꺼낸 동치미를 간장에 쿡 찍어 아삭아삭. 늘 별 반찬은 없었다. 시래기국, 배추김치, 동치미, 어쩌다 연탄불에 쓰윽쓰윽 구운 김이라도 있으면 최고였다. 갓 구운 김을 간장에 싸 먹는 그 맛이 기가 막혔다. 허영만씨의 ‘식객’만화에서 갓구운 김을 잘 지은 밥에 간장 넣고 싸 먹는 그 단순한 맛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백번 공감했다. 지금은 추억속의 그 맛을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저녁을 잔뜩 먹고 이불 속에 발을 넣고 TV(다리가 넷 달린 네모난 집에 문이 달려 있어 열쇠로 잠글 수 있었다)를 보다보면 누군가는 꼭 방귀를 “뽀옹” 담요속은 온통 으으!! 좁은 방에서 피할 길은 없다. 덕분에 문 한번 열어 시원한 바람 한번 쏘인다.
긴긴 겨울밤 슬슬 출출해지면 건너방과 안방사이에 있는 대청마루에 가서 차가운 호박죽이나 팥죽을 한 양푼이 떠온다. 숟가락 몇 개와 동치미를 가지고 와 야식이다. 오남매는 그렇게 옹기종기 아웅다웅 겨울밤을 보냈다. 겨울을 나고 개학할 때가 되면 볼이 터질 것 같이 통통 해 져 있었다.
지금 고향집은 그 집이 아니다. 그 집이지만 부엌도 편리하게 고쳤고 방도 넓어지고 자다가 일어날 필요가 없는 기름보일러이다. 추운데 밖에서 덜덜 떨며 씻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TV에서 정신과의사선생님이 어떤 장소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안전지대’를 가져보라고 하셨다. 그 때 문득 밖은 깜깜하고 추웠지만 엄마, 아빠, 형제들이 함께했던 그 겨울의 따스했던 밥상이 떠올랐다. 겨울저녁 옹기종기 모여 꿀맛같이 먹던 그 밥상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제 내가 그 시절의 엄마나이이다. 그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따스한 밥상으로 가족들을 지켜주었던 그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사는 것이 문득 두려워 질 때면 아직도 엄마를 떠올리고 그 시절을 떠 올린다. 엄마는 나처럼 그런 생각가질 겨를도 없이 살아오셨을텐데...
내 아이가 내 나이가 되면 엄마의 밥상, 추억의 밥상을 어떻게 떠올릴까??
이연경/충남 천안시 신방동 /010-4190-9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