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정말 잘 간다. 그날이 그날인, 그저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건만 무엇이 그리도 아쉬워 같이 밥이라도 한 그릇이 먹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돌려대고, 오는 해를 잘 맞이하라고 복을 듬뿍 주고받고....그러는 가운데 2012년이 되었다.
그래, 밥이라도 한 그릇.
그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기실 상당히 중요한 일일 지도 모른다. 우린 만나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 늘 밥 한 그릇이 함께 하니까.
그러나 내가 그녀와 헤어질 그 순간에는 밥이 아니라 뜨끈한 국수였다. 그것도 그냥 우리네 국수가 아니라 입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베트남 쌀국수.
그녀와 내가 만난 건 2010년 8월이었다. 그녀는 결혼 이민여성이다. 그녀는 키가 작으마하고 눈이 커다랗고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서투른 억양과 살짝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한국에 온지 3달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겨우 인사 정도나 기초 단어 몇 마디 밖에 할 줄 몰랐다. 남편은 늘 야근을 하여 오밤중에나 들어왔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할 데 없는 그녀이기에 나의 방문이 무척 반가운 일인 것 같았다.
우리는 차근차근 공부도 하고, 비록 단어 몇 마디로 통하는 대화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5개월이 지나 겨울에 끝나게 되었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5개월 만에 조금 늘어
“선생님 밥 먹...?”
에서
“선생님 식사했어요? 커피 마셔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날은 약속한 5개월의 수업이 끝나는 날이었다. 난방도 하지 않은 차가운 거실에서 덜덜 떨면서 수업을 1시간쯤 하고 나니 그녀가
“선생님 오늘 공부 끝, 이제 선생님 안 와, 선생님 보고싶어요”
하면서 나를 주방으로 끌고 가서 좁은 식탁에 앉혔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놓은 듯 부산하게 국물을 데우고 쌀국수를 삶고 냉장고에서 삶아놓은 수육과 야채를 꺼내더니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를 한 그릇 떡하니 갖다놓는 것이 아닌가. 뽀얀 쌀국수 위에는 잘 삶은 편육과 쑥갓, 또 이름 모를 야채가 예쁘게 고명으로 앉아있었다. 추운 마루에서 덜덜 떨고 앉아있었던 나는 아, 이게 웬 일인가 하고 체면 불구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그 구수하고 시원하며 온 몸을 훈훈하게 달구던 국물 맛이라니....이제는 고명으로 얹은 편육과 야채도 먹어야지. 쑥갓도 향긋하고, 편육도 맛잇고, 근데 이건 뭐지?
“선생님 그거 한국 사람 안 좋아~요”
“뭐? 한국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고? 그래도 먹어봐야지.”
그건 바로 고수라는 야채였다. 뭐랄까? 톡 쏘면서도 매운 맛과 독특한 향이 나는, 베트남 사람들은 그 야채가 없으면 쌀국수 제 맛이 안 난다고 꼭 넣어서 먹는다는 야채. 그 낯설고 독특한 향에 찡그리는 나를 보고 까르르 웃던 그녀. 이제는 한국말도 잘하고
“선생님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문자도 보낼 줄 안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이면 그녀의 감사하는 마음이 녹아 더 뜨끈하고 부드러운 쌀국수, 그녀의 그 쌀국수가 간절히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