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부찌개 >
1976년, 아주 오래 전 일이다 .
수원에서 여고에 다니던 무렵, 우리 학교에는 수원지역과 인근 읍면에서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명문 ㅅ여고에 진학한 아이들이 몇 있었다 입학시험을 치르던 때라 읍면에서 온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시골 동네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던 수재들이었다 .
그때 ‘자정’ 이라는 친구가 읍면지역에서 왔는데 굉장히 공부를 잘하고 귀여운 외모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 그런데 수줍음을 타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수원에서 살았기에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녔고 자정은 학교 앞에서 지금의 원룸이 아니고 진짜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했다 .하루는 다른 수원 친구와 자정의 자취방에 놀러갔는데 자정은 깜짝 놀라서 들어오라고 하더니 쌀을 씻어 냄비에 밥을 안치고 슬립퍼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자정의 손에는 ‘두부’ 한 모가 들려있었다 .
자정은 밥 뜸이 드는 동안 다른 냄비를 열더니 두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로 1 등분 세로 8등분을 해서 16족으로 나눈 다음 고추, 파, 마늘을 넣고 새우젓 간을 해서 두부찌개를 끓였다 .같이 간 친구나 나나 날마다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터라 자정이가 끓여주는 마법 같은 밥과 두부찌개가 경이로웠다 . 생업이 농업이었던 지정의 아버지가 생활비를 충분히 주었을리 없는데도 자정은 서슴없이 두부를 사와서 뜨끈한 밥상을 준비했던 것이다 .
그 뒤로 자정과 40여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다 . 다만 요즘에 덜 좋은 일로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그 밥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