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전, 대학 새내기인 나는 친구 영숙이와 대전 근교로 등산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산이라야 하루 코스로 다녀야 했기에 대둔산과 계룡산을 다니는 정도였지만,
하루는 영숙이가 덕유산을 가자고 청했다. 당시엔 교통이 불편해 무주에서 다시 덕유산까지 들어가는 차로 하루에 다녀오기는 무리였다. 영숙이는 무주에 친구가 사는데 그 친구네 집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 첫차를 타면 덕유산을 갈 수 있다고 친구가 초대 했다고 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무주 터미널에 내렸다. 덕유산 가는 곳과는 반대로 한 시간을 간 친구네 집은 가는 차 안에서부터 너무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우린 만나자마자 너무 맘이 통했다. 시골 국민 학교에 가서 풍금도 치고, 걔네 집에 기르는 누에도 신기하게 구경하고, 또 그 앤 그 동네 전화 교환원이라서 우리에게 동네로 걸려오는 전화들을 받아 연결해주는 일터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냇가에 가서 다슬기도 잡고, 저녁 어둑할 때까지 놀다 들어오니 희미한 전등 아래 친구 어머니는 분주히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웃해 살고 있는 그 아이의 언니네 식구까지 와서 집안이 매우 북적거렸으며, 그 친구의 어머니는 대전서 온 손님이니 특별식을 준비했다고 맛나게 먹으라고 하셨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보고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그러나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수제비인 것을 알고 몹시 실망을 했다. 사실 "수제비"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저를 들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정성을 봐서 맛있는 척 먹어야 할 텐데 목으로 제대로 넘길 수 있을까? 그러나 억지로 한 수저를 먹는 순간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때의 수제비는 내가 먹어 본 수제비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어찌나 맛나던지 바닥까지 핥으며 두 그릇을 비웠다. 그 수제비는 우리가 낮에 잡아 온 다슬기에 된장을 넣고 푹 끓여서 그 물에 수제비반죽을 넣고 끓인 것이었다. 수제비를 다 먹고 난 후 멍석을 깐 마당에서 후식으로 다슬기를 까먹으며 어찌나 행복했던지. 다음날 첫 차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며 우리보다 더 먼저 달려 나가 차를 잡아줬던 그 친구. 그 만남 이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먼저 세상을 등졌다고 친구 영숙이한테 들었다. 난 그 마을 이름도, 그 친구와 그 가족들의 얼굴도 잊었다. 하지만 그 가족들의 따뜻했던 정과 다슬기 수제비를 먹었던 미각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제비를 먹을 때마다 그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했던 다슬기 수제비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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