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30년전 대학생이 된 나는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독립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용돈을 받았지만 일상에선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생활에 날마다 설레고 좋았다. 밥 해 먹는 것만 빼고.
대부분의 자취생들이 그렇듯이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학교 식당이나 근처에서 값싼 면류로 때우고 저녁조차 제대로 못 먹으면 커피. 과자등으로 연명했다.
그러다 2학년 때 내가 사는 집 건넌방으로 이웃학과의 같은 학년 친구가 남동생과 자취를 하려고 이사를 왔다.
그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고등학생인 동생 밥을 해주면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이다. 나에게도 먹기를 권하는데 도무지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고 미안하기도 하여 처음엔 사양하다 슬슬 잠은 따로 자고 밥은 같이 먹는 빈대 식객이 되어갔다.
친구 밥상의 거의 모든 식재료는 청풍명월 맑은 곳에서 어른들이 손수 농사 지으신 것들인데, 국물 종류는 된장찌개 아니면 김치찌개인데 특이하게도 떡국을 한 줌씩 넣었다. 시골에서 보내 준 떡을 빨리 먹기 위해 그랬는지 몰라도 건져 먹는게 심심하지 않고 쫄깃했다. 반찬은 어머님이 정성껏 장만하신 말린 나물 (호박, 고사리. 무말랭이. 가지등등)을 주로 들기름에 볶거나 무쳐내고 손수 참기름 발라 바삭하게 구운 김을 정갈하게 썰어 놓고 금방 지은 밥으로 작은 상이지만 풍성하게 차려낸다. 나는 잠도 덜 깬 눈으로 친구 방으로 건너가 부시시한 얼굴을 하고 한 그릇씩 다 먹었다. 설거지라도 내가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친구는 어떻게 그 나이에 밥심의 깊은 뜻을 알았을까? 또 그렇게도 부지런했을까? 나는 아직도 밥상 차리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이다 같은 또래라도 엄마같은 친구다.
그렇게 얻어 먹은 밥상 중에 지금도 맛이 기억되는 것은 내가 몸살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며칠동안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때 친구가 밥상을 들고 내 방으로 왔다. 늘 보던 대로 차려졌지만 왠지 더 윤기가 흐르고, 따뜻해 보였다.입맛이 없어서 안 먹으려 하니 "감기는 밥상 밑으로 떨어진다잖어 어서 먹어!"하며 할머니 같은 투로 명령을 하면서 안 먹으면 안 나간다며 기다리는 것이다. 뭉클한 맘에 억지로 한 술 떠보니 정말로 너무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다. 씨익 웃으며 상을 들고 나가는 친구의 그 때 모습은 지금도 새록새록 고맙다.
요즘 말로 완벽한 유기농 상차림으로 웰빙 식사를 하게 한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다.(아주 오랜만이다)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정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친구는 신김치찌개 밖에 해 준게 없다며 겸손해 한다.
어린 날 골목에서 해질 때까지 놀고 있으면 엄마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밥 먹으라면 더 놀고 싶어 숨었던 날로 다시 돌아가면 속 썩이지 않고 얼른 달려가 먹을텐데...
친구가 아침 밥을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면서 "인생은 기다림이다" 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일찍일찍 일어나 밥을 먹을텐데...
후회와 그리움의 크기만큼 내 손길을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정성으로 밥상을 차려 주는 것이 엄마랑 친구에게 받아 먹기만 한 내 삶을 조금은 공정하게 만들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 하면서 우리가 82학번이고 올해가 꼭 3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했어요. 의미가 더 깊은 것 같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