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다

조회수 13040 추천수 0 2012.02.28 21:45:03

9년전 난 취업재수생이었고 남자친구는 군대를 갓 제대한 복학생이었다.

이미 한 번 시험에 떨어진 나는 다음 시험을 준비하며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고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만나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로 오곤 했다.

둘의 주머니 사정도 뻔했고, 난 시험을 준비 중이었기에 시내에서 영화를 본다거나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하는 데이트는 꿈꾸기 힘들었다.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학교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우리의 단골 데이트코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친구가 나를 위해 참 많이 배려를 했던 것이었다. 만약 내가 남자친구의 입장이었다면 난 매일 심심하다고, 이게 뭐냐고 투덜투덜 했을 것이다.

그러다 내 생일이 다가왔고 남자친구는 무언가 특별한 걸 준비했는지, 생일이 오기 며칠 전부터 내게 언지를 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나는 남자친구의 무언가 말을 하고 싶으면서 참는 태도를 보며 특별한 선물을 기대하게 되었다.

드디어 내 생일이 다가왔고, 난 남자친구가 커다란 꽃다발과 반짝이는 선물을 들고 오는 상상을 하며 감동을 표현할까 미리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남자친구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상상했던 꽃다발은 없었지만 커다란 가방 안에 내가 기대했던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할인마트에서 파는 양념장어, 후라이팬, 그리고 상추였다. 시험 준비생이었던 난 따로 밥을 해먹는 시간도 아까워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 저녁은 주로 학교 구내식당에서 먹었는데, 남자친구에게는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며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장어인가... 여자친구의 생일 선물로 장어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론 마음에 드는 것처럼 표현을 했지만 내 기대와 너무 다른 선물에 마음 한 편 약간의 실망도 있었다. 여자마음을 참 모르는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고마운 마음과 서운한 마음,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자취방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남자친구가 준비해 온 장어를 익혀 먹으며 생일을 보냈다.

남자친구의 정성어린 응원 덕에 난 건강히 수험생활을 마쳤고 다음 시험엔 무난히 합격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직장생활 8년차...지금은 내가 원하면 맛있고 비싼 음식을 언제든 사먹을 수 있다. 하지만 9년 전 내 생일 선물로 받았던 그 장어는 이제 먹을 수 없다. 물론 마트에 가면 양념된 장어를 살 수는 있지만, 그건 결코 9년 전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남자친구가 해 준 음식은 어떤 비싼 선물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음을......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아이의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기에...... 그리고 이제 그 친구는 내 곁에 없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봄이 다가오는 지금, 문득 그 때의 우리와 그 친구가 차려주었던 생일상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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