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찾아 나서고픈 역마살 유전인자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떠남'은 언제나 내 인생의 화두이다. 5살, 7살 칭얼대는 딸아이들과의 삶에 터지고 으깨지며 매일을 힘겹게 살던 내가 선택한 곳, 모든 것을 훌훌 떨치고 남편과 함께 떠난 곳은 'PARIS' . 2002년 12월 24일 아침, 우리의 현재를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감사드리기 위해 파리의 지하철에서 기분좋은 출발을 했으나, 행복도 잠깐 엄청난 사건이 있었으니, 파리의 불법 재화 재분배의 달인 '소매치기'님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바치고, 무일푼으로 경찰서와 영사관을 헤맸다. 적잖은 분노와 불안으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까페에서 주불 한국대사관 영사부부(우리가 얼마나 야속했을까?)는 진한 에스프레소향으로 우리를 반기셨다. 영사부부는 수 많은 빈털털이 한국 관광객에 대한 예우로 거지나 다름없는 우리에게 맛나고 저렴한 점심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대접하셨는데...'한번 맛보면 인이 박히는 맛이라, 아마 못 잊으실 겁니다' 라며 이곳 유학생들한테는 인기라며... 진하고 시원한 돼지고기 육수에 쫄깃한 쌀국수 그위로 넓적한 고기고명, 숙주 난생 처음 맡아보는 고수향에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도는 것이 낯선 이국 땅에서 무일푼, 처량한 신세에 대접받는 점심이 어찌나 맛나던지 우리 부부는 체면이고 뭐고 없이 한 방울이 국물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고 나니 영사부부가 웃으시며 '드실만하시죠?'라고 묻는다. '맛있네요'라며 얼버무리는 우리 부부에게 맛난 점심과 함께 서울에서 보내올 달러를 기다리는 동안 쓸 수 있는 천금같은 프랑(당시는 유로통합전)을 손에 쥐어주시며 남은 여행을 기원해주시는 영사부부에게 수도 없이 고개숙여 절을 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서울가면 꼭 감사인사를 잊지않고, 돈도 갚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10년 그동안 파리를 두번이나 더 방문했는데, 2002년 당시 주불 한국대사관 영사로 재직하셨던 PARK SANG-KOO 님께 인사를 못드렷다. 이제야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우리 부부 이제는 '여행광'이 되어버렸답니다. 멋진 미소로 저희 부부 불안을 없애주신 사모님 '감사합니다' 파리의 베트남쌀국수와 진한 에스프레소는 우리 부부 여행담에 멋진 프롤로그 음식이 되어버렸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