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을 배우기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나는 TV에서 본 ㄷ학원을 쫒아서 온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때가 1999년. 뭔가를 준비중이었기에 불안했고 안정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한다. 나는 오빠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반지하방의 사촌형 방에 사촌여동생이랑 함께 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얹혀살았다.
가난했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심지처럼 박혀있을 때였다. 그러던 중 내 생일 날이 돌아왔다. 사귀고 맞는 첫 생일이었기에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 나이때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에 예쁜 꽃다발도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나를 사촌형 집으로 초대했다. ‘깜짝 선물이 있는 걸까?’란 생각으로 신림동의 반지하방으로 갔다.
쑥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표정의 그는 “미안해, 처음 만들어본 거라 모양이 예쁘지 않아.”라며 포장지도 없는 낮은 원기둥 모양의 고구마 케이크를 주었다. 정말 말 그대로 고구마케이크였다! 둥근 빵에다가 삶은 고구마를 잔뜩 으깨서 바른 모양. 지금의 나라면 웃음이 나왔을 테지만 그 당시의 나 또한 풋풋한 20대. 케이크를 만들어준 남자친구가 민망했고 또 케이크가 못생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우리 둘을 지켜보던 사촌여동생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쏘았다. “언니, 이거 오빠가 어제부터 만든 거예요. 별거도 아닌 거 만들면서 얼마나 수선을 떨든지...벌써 두 번이나 실패하고 세 번 째 성공한 거예요.” 실패한 것들은 모두 사촌형과 사촌여동생의 입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사촌형과 사촌여동생은 고구마에 질려서 더 이상 ‘고’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접이 상을 펴고 접시위에 케이크를 올리고 과자와 과일을 올린 생일상을 받고 나서야 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낯선 서울 땅에서 향수를 느꼈던 것 같다. 울퉁불퉁한 그때 그 고구마케이크. 삶은 고구마는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지만 그 맛은 꿀맛이었다. 설탕과 삶은 고구마를 으깨었을 남자친구를 생각하니 꿀맛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한 지 7년째, 우리는 요즘도 그 반지하방을 떠올리곤 한다. 쾌쾌한 곰팡이향과 함께한 그날 고구마케이크 얘기를...
결혼하고는 한번도 케이크를 만들어준 적이 없다. 매일 밤 12시가 넘어 들어오는 남편이 오히려 애처러울 정도다. 그래도 내 생일마다 남편이 거르지 않는 게 있다. 밤12시가 넘어와도 꼭 미역국을 끓여놓는 다는 것이다. 미역국을 먹는 내 생일날은 꼭 그날의 고구마케이크처럼 여전히 쑥스럽고 남편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