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고 다짐한 게 세 가지 있었다. 아기를 낳으면 모유수유를 한다, 천기저귀를 쓴다, 세 돌이 될 때까지 꼭 붙어 지낸다. 천기저귀는 약간의 수고로움이 들겠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두 가지는 다짐이랄 것도 없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젖이야 나오는 대로 물리면 되겠지만, 더 완벽한 수유를 위해 보건소에서 하는 강의도 듣고 책도 찾아보고 유선을 미리 풀어준다는 마사지도 받아두었다.

 아기는 예정일을 꼭 맞춰 세 시간여만의 진통 끝에 쑥 하고 세상에 나왔다. 말 그대로 순산이었다. 나는 읽고 배운대로 태어난 지 삼 십 여분 만에 젖을 물렸고, 신생아실 선생님에게도 분유나 포도당은 일체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 하루 만에 젖이 도는 산모도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병원에 있는 삼일 내내 젖이 돌지 않았다. 아기는 세상에 나온 당혹감에 울고 배가 고파 울어댔다. 잠든 아기를 보고 간호사 선생님은 배가 고파 지쳐서 자는 거라며 혀를 끌끌 찼다.

 집에 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젖양은 절수를 앞 둔 수도꼭지 같았다. 젖양을 늘릴 수 있는 세상의 모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감질나는 아기는 하루에 20시간을 가슴에 매달려있었다. 젖을 물린 상태로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산모들이 젖이 모자라 애가 타는 줄 몰랐다. 근거도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액체들을 마셔댔다. 분유도 줘 봤지만, 분유양을 늘리다 보면 모유양은 더 줄어들 것이고 그러다보면 아예 단수가 될 것 같았다.

 친정엄마는 아기가 안쓰러워 도저히 안되겠다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시더니, 장을 봐 오셨다. 돼지족발과 한약을 함께 달여 먹는 그것은 ‘통유탕’이라 하였다. 엄마는 구하기 힘든 어떤 동물의 비늘도 들어있다며 뿌듯해하셨다. 나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났다. 다른 산모들도 돼지족 삶은 물은 못 먹겠다고들 하던데, 나는 육고기를 끊은 지 9년이 넘어 고깃집 앞에만 지나가도 속이 울렁거리곤 했다. 임신 중에도 고기 한 점 입에 대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여 등장한 그것의 모양새는 대접에 담긴 기름 둥둥 뜬 밀크커피 같았다.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배고파 우는 아기를 보고 세상에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양 손으로 대접을 들어야했기 때문에 코를 막을 수도 없었다. 몇 번 구역질을 하면서 끝내 대접을 비웠다. 세상에 그런 맛은 없다. 돼지국물에 한약 탄 맛.

 친정엄마는 너는 젖이 남들 반도 안 나오니 이것도 두 배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2주 동안 이를 악물고 국물을 마시며, 나도 할 만큼 했으니 6개월만 지나면 젖을 끊어야지 다짐했다. 그렇게 6개월을 넘기고 돌이 지났다.

 18개월이 지날 무렵 젖을 떼기로 했다. 밥에 영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기를 위한 처방이었다.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한 젖이어서 아기는 오래라도 먹고 싶었나 보다. ‘아가야, 오늘이 엄마젖 먹는 마지막 날이다’ 말해주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젖 먹다 말고 엄마를 보며 행복하게 헤벌쭉 웃던 우리 딸래미, 사랑한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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